[한류열풍]<上>어떻게 확산되고 있나

  • 입력 2004년 12월 2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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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동아시아 문화계의 키워드는 한류(韓流·Korean Waves)였다. 일본의 용사마 열풍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에서 한류는 하나의 신드롬으로 확산됐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한류는 이제 중남미 유럽 중동 지역으로까지 파급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한류는 한국만의 문화가 아니라 세계의 문화인 ‘세류(世流)’로 성장해야 한다는 제언도 하고 있다. 한류의 확산 경로와 전망을 진단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확산되기 시작한 한류는 아시아의 범위를 넘어 세 가지 방향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대만, 동남아를 거쳐 중동으로 가는 ‘아시안 루트’를 비롯해 섬나라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일본, 유럽과 미주 대륙으로 가는 ‘구미 루트’ 등이다.

● 아시안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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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만 동남아 중동을 잇는 루트다. 중국은 사실상 한류의 진원지다. 한류라는 단어도 1999년 중국 언론이 본격 사용하면서 신드롬으로 자리 잡았다. 1997년 중국 CCTV가 방영한 ‘사랑이 뭐길래’는 평균 외화 시청률 1%를 뛰어넘는 4.3%를 기록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어 안재욱의 ‘별은 내 가슴에’도 한류의 불을 지폈다.

대만에서는 ‘클론’ 등 가수들이 먼저 한류 전도사로 나선 데 이어 1998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가 본격적인 한류 열풍을 부채질했다. 대만의 한류 바람에 힘입어 1998년 베트남에서 드라마 ‘의가형제’가 인기 몰이에 성공했으며 ‘별은 내 가슴에’ ‘가을동화’ ‘겨울연가’는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강진석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과 대만은 홍콩 누아르의 허무 코드와 일본의 만화적인 엽기 코드에 지쳐 새로운 문화를 갈망하고 있었다”며 “이런 배경 아래 가족공동체와 효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순수하고 세련된 사랑을 전하는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인들에게 어필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 중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여서 중동 진출의 거점으로 꼽힌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교도에게 어필한 드라마나 노래는 중동 국가에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인기가 높았던 ‘가을동화’는 올해 8월 이집트 국영TV에서도 방영됐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에는 드라마와 관련한 문의 전화 수백 통이 올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는 점이 한류의 중동 진출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손선홍 홍보과장은 “이집트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잇는 문화적 접점”이라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도 이슬람 계열이어서 이집트-중동-중앙아시아를 묶는 한류 벨트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일본

일본은 섬이어서 독자적 문화권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한류의 확산 루트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의 문화시장 규모는 1300억 달러로 단일시장으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크기 때문에 한류가 아시아에서 최대의 부가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곳이다.

올해 배용준을 비롯한 수많은 탤런트와 이수영 등 가수들이 이곳으로 진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겨울연가’는 2003년 위성방송에서 소개된 뒤 올해 NHK가 다시 방영하면서 한류 열풍의 동력이 됐다. 일본 방송사들은 ‘파리의 연인’ ‘천국의 계단’ 등을 방영했거나 하고 있으며 SBS 드라마 ‘유리화’는 일본 기업의 지원을 받는 등 한류를 겨냥했으며 곧 일본 NTV에서 방영된다. 일본 음반사들도 한국 가수들의 영입 계약을 서두르고 있어 한류는 지속될 전망이다.

● 구미 루트

미국은 아시안 커뮤니티를 통해 한류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어 케이블 채널에서 드라마 ‘대장금’을 방영하거나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틀기도 한다.

멕시코는 중남미 한류 바람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멕시코 공영방송 ‘메히켄세’가 2002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이브의 모든 것’을 방영하자 안재욱 장동건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별은 내 가슴에’는 이후 여러 차례 재방영됐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댄스음악을 배경으로 한 오락기기인 ‘펌프잇업’이 멕시코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기기에서 나오는 ‘듀스’ ‘클론’의 노래가 히트곡이 됐고, ‘펌프잇업’ 삽입곡을 연주한 그룹 ‘반야’는 10월 한 달간 멕시코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미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맹주국인 멕시코를 통하면 인근 국가는 물론 미국 남서부의 히스패닉(스페인어계 미국인)으로까지 한류가 확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리랑TV 김태정 수출지원센터장은 “멕시코 한류 바람을 계기로 내년에 ‘불새’ ‘천생연분’ ‘천국의 계단’ 등을 아르헨티나 파나마 페루에서 방영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럽은 타 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류의 확산이 기대되고 있다. 프랑스는 한류의 유럽 진출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는 가늠자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중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프랑스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것처럼 한류도 그런 과정을 거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프랑스 TF1 TV는 오전 7시 국산 만화 ‘뽀롱뽀롱 뽀로로’를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다. 특히 내년 4월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MIPTV(프로그램 견본시)’는 한류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한국은 ‘올해의 국가’로 선정돼 한류 드라마를 본격 선보임과 동시에 세계 방송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전현택 국제마케팅팀장은 “한류는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의 주류 시장에는 아시안 커뮤니티를 통해 파고들 수밖에 없지만 유럽 시장은 프랑스를 기점으로 확산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 전문가가 본 평가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인 KFC는 최근 중국에서 한류 열풍을 이용한 TV 광고를 내보냈다. 그 광고 내용은 두 청년에게서 선물을 받은 젊은 여성이 ‘모두 한국제’라며 기뻐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인에게 ‘한국 것은 좋다’는 인식이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권기영 중국사무소장은 “최근 방영된 ‘인어아가씨’를 본 중국 누리꾼(네티즌)들이 ‘왜 우린 이렇게 못 만드냐’는 자기 비판을 하기도 했다”며 “당분간 한류를 대적할 만한 문화 콘텐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한류 열풍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중국 팬들은 한류 드라마들이 서양 수준에 못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의 정서에 맞는 콘텐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한류 열풍에 대해 중국정부가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대응방안도 필요하다.

권 소장은 “할리우드가 중국의 ‘뮬란’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듯이 한국도 중국의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해 중국 시장에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중국만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겨울연가’의 열풍은 일본 문화의 주류가 아니라 일종의 틈새 시장을 개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겨울연가’ 열풍은 드라마의 완성도보다 일본 중년 여성이 원하는 향수 코드를 제공한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런 코드에 대한 욕구가 충족된 뒤에도 비슷한 소재가 이어지면 일본의 한류는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사그라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반(反)한류 움직임에 대해서는 “한류를 폄훼하는 데 주목하지 말고 일본 문화산업계가 한류를 어떻게 상품화해 한국에 되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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