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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9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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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는 흔히 김수영(金洙暎·1921∼68)과 더불어 광복 후에 등장한 가장 문제적이며 대조적인 시인이라 평가되어 왔다. 한 살 터울인 이들 두 시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척적인 지점에 서 있었다. 언어 구사 면에서 김수영이 분방하고 활달하면서도 때로 거칠고 투박하기까지 한 반면 대여는 극히 소극적으로 소심하게 세련됨을 보여주었다.
김수영이 역사와 현실에 대해 그야말로 온몸으로 밀고 가면서 육성으로 대처한 데 반해 대여는 현실에서 몇 발짝 물러서 있으면서 때로는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적의(敵意)마저 보여주었다. 이제 쌍벽으로 불리던 두 시인이 모두 가버린 오늘 우리 시단은 그만큼 적막해졌다.
대여는 ‘구름과 장미’, ‘늪’ 등의 초기 시집에서 모국어의 시적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그 세련에 주력했다. 대여 자신이 선배 시인들의 업적에 기대어 언어 실험에 주력했던 시기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 시기의 대여는 ‘부재(不在)’와 같은 순정 서정시로 우리 현대시에 크게 기여했다. 시집 ‘꽃의 소묘’, ‘타령조 기타’에서는 이데아의 시를 지향하면서 생경한 관념어를 넘어선 이데아의 형상화에 주력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인구에 회자되는 시편 ‘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시는 이 시기의 대여 시편을 통해 이데아와 서정의 행복한 결합을 목도하게 된다. 이 시기의 대여는 많은 시적 추종자들을 낳았지만 그가 이룬 성취에 도달한 경우는 희귀한 게 사실이다.
시집 ‘남천(南天)’을 전후해 대여는 이른바 무의미의 시를 지향한다. 언어의 지칭적(指稱的) 국면을 배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시를 사물화하는 시적 노력은 서구 근대시의 한 기본적 충동이기도 하다. 대여가 시도한 것은 리듬을 통해 음악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미적 이미지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성공적인 경우 그것은 ‘이미지의 음악’이란 역설을 구현했다.
현실과 역사에 대해 적의를 가졌던 대여는 그 논리적 귀결로서 의미에 대해서도 적의를 갖게 됐다. 그의 무의미의 시는 의미로부터의 도피요 둔주(遁走)였다. 자기의 길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정신은 희귀하다. 대여는 의미로부터의 둔주를 극한까지 몰고 간 귀중한 우리의 실험적 현대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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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또래야 물또래야/금송아지 등에 업혀/하늘로 가라’라고 대여는 노래했다. 금송아지 등에 업혀 하늘나라로 가는 대여 선생의 명복을 빈다.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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