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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7월 9일 1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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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의 문제다.” “문화 차이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선수들이 부진할 때마다 꼭 한번씩 나오는 이야기다. 서양 선수들은 자기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절대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아픈 몸으로 팀 승리에 공헌했다 해도 나중에 부상 사실이 알려지면 오히려 비난받는 분위기다. 거짓말을 해서라나.
서구화가 많이 됐다고는 하지만 이런 풍경이 우리에겐 아직 낯설다. 온몸이 쑤시고 허리가 뻐근해도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주사라도 맞고 등판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의 미덕인 듯하다. 패한다 해도 이를 부상 투혼이라 칭송하지 않는가. 똑같은 행동을 보고도 우리와 그들은 왜 이렇게 달리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 정말로 우리와 그들이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걸까?
동서양 문화가 서로 다르고 그 속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에 뭔가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이다. 서로 만나 보면,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생각은 전혀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어떻게 다른지를 실험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보여준 사례는 이 책이 처음인 듯하다. 이 책의 저자가 지난 몇 년간 역자를 포함한 동양인 연구자들과 함께 수행한 흥미로운 실험들을 찬찬히 음미해 보자. 서양 아이들이 동사보다 명사를 더 빨리 배우는 이유는 물론이고 적어도 박찬호와 김병현의 고군분투(孤軍奮鬪)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
이 책에 언급된 많은 실험들을 꼼꼼히 따져 보면서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는 어떤 이는 이 책이 인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다는 말에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보인다고 좋아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저마다 다른 기대를 품고 첫장을 넘겼으리라. 인문사회학도들은 문화상대주의의 심리학적 기초를 찾으려고, 한의학도들은 전일적 사고방식이 분석적 서양의학에 비해 열등하지 않다는 주장을 듣고 싶어서, 그리고 외국인과 협상해야 하는 바이어들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전략을 전수받을 수 있을까 하고….
사실, 인간 본성의 보편성을 믿는 나는 인간의 사고 내용뿐 아니라 그 과정마저도 동서양이 서로 다르다는 저자의 도발적 주장에 발끈해 이 책을 펼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기대나 반발을 만족시켜 줄 만한 단초들이 이 얇은 책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에 이내 매료되고 말았다.
곧 또 한 권을 더 사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김병현 선수에게 팬으로서 선물할 생각이다.
장대익 한국과학기술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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