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감성크로키]‘사랑 방정식’

  • 입력 2004년 7월 8일 16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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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잔뜩 필(feel)이 ‘꽂혀’ 있다.

인터넷에는 “애기야, 가자”, “이 안에 너 있다” 등의 어록이 유행하지만 실은 그들은 지난겨울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권상우 대사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처럼 상투적 뉘앙스가 있다.

오히려 ‘백마 탄 왕자님’ 박신양의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좀 서툴러. 도덕 시간에 졸았거든”처럼 감정을 무심하게 털어낸 대사가 여자들의 마음을 마구 흔든다.

내 주변에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여럿 있다. ‘32세, 남편을 찾아라’라는 미션을 주문처럼 외면서도 ‘생각이 너무 많은 여자’라며 머리를 쥐어박기도 한다. 이들이 한결같이 열광하는 ‘파리의 연인’ 속 왕자님은 다음과 같다.

즐겨 입는 스트라이프 셔츠는 ‘공부는 1등, 운동은 만능’인 그의 성장 배경과 느낌이 닮았다. 여자가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준다. 황태자의 부담스러운 선물 공세와는 엄연히 성격이 다른 것이다. 무엇보다 왕자님은 여자로 하여금 여자다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드라마 속에서 행복한 여자, 김정은은 신데렐라나 캔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남자들에게 물었더니 “표정이 많다”, “솔직하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눈 속에 쨍그렁 별이 빛나는 그녀의 화법은 이런 식이다. “당신, 나빠요. 내가 고맙다는 말 하기 전에 화부터 내게 만들잖아요. 아무튼 고마워요.”

불우한 처지의 ‘귀여운 여자’에 대한 왕자님의 로맨틱한 감정은 사랑일까, 동정일까. 한 남자는 말한다.

“물론 사랑이다. 측은지심이라면 박신양에게 매달리는, 돈 많은 국회의원 딸에게도 잘 대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녀는 왜 그렇게 인생을 불쌍하게 살까 하고.”

평범한 남자들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왕자님’처럼 우뚝 서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드라마 속 상황을 바꿔 본다. 만약 돈 많은 여자가 남자의 구질구질한 일상의 고민을 척척 해결해 주고, 야근한 남자에게 셰이빙 크림을 선물한다면.

얄밉게도 남자들은 말했다.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김정은이냐, 조정린이냐처럼요.” (조정린씨. 미안합니다. 당신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전형적인 판타지물인 ‘파리의 연인’ 공식에 따르면, 남자는 능력있고 여자는 사랑스럽다. 이 땅의 필부필녀는 케이크 크림 짜는 기계처럼 감정 분량을 절묘하게 조절하면서 운명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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