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두드려라, 112개의 門”…안규철 설치미술등 작품展

  • 입력 2004년 3월 7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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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작 ‘112개의 문이있는 방’.
안규철 작 ‘112개의 문이있는 방’.
전시장 입구 벽에는 긴 코트를 입은 정장차림 두 남자의 흑색 회색 실루엣이 반복해 그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현대적인 느낌의 벽지 같기도 하지만 실루엣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두 사람의 다섯 가지 행동이 반복적인 컷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내용이 심상치 않다. 만나서 악수하던 두 사람이 마지막에는 돌연, 한 사람이 자신의 입에 다른 사람의 머리를 집어넣고 있지 않은가.

겉보기엔 아름다운 벽지 같은데 사실은 약육강식의 살벌한 인간관계를 희극적인 상황으로 반전시킨 것이다. 실루엣에는 잡아먹힌 한 사람이 쓰고 있던 모자가 땅에 떨어져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벽 왼쪽 중앙에는 플라스틱 박스에 실제 중절모가 놓여있다. 그림의 상황이 실제 상황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국내 개념미술의 대표 작가라 할 수 있는 안규철 개인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 키워드를 ‘결핍’ ‘상실’ 현기증‘이라고 말했다. ‘안규철-49개의 방’이라 이름 붙여진 이번 전시에는 사회부조리와 모순을 우화적, 만화적 감수성으로 공간화한 설치작품과 모형 연작, 드로잉 등 8점이 출품된다.

날개 모양의 흰 가방이 앞에 있고 그 뒤 벽에 11점의 드로잉과 글이 씌어져 있는 ‘그 남자의 가방’은 익명의 한 남자가 작가에게 맡기고 간 가방에 관한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질문하는 작품이다. 미술과 문학의 접목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

‘112개의 문이 있는 방’은 이 문들이 만든 49개의 작은 공간들로 구획된 방이다. 가로로 7개의 문, 세로로 7개의 문이 늘어서 각 방마다 사면이 모두 여닫을 수 있는 문으로 구성된다. 문이 모두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다보면 타인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역설적 공간이 연출된다. 혼자이면서도 네트워크에 걸려 혼자일 수 없는 현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13일 오후 2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돼 있다.

4월25일까지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 02-2259-778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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