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이카로스의 날개…라이트형제 비행 성공

입력 2003-12-16 18:37수정 2009-10-10 07:04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인간에게 하늘을 열지 않았던 신(神)은 이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킬데블(Kill-devil)’ 언덕.

1903년 마침내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가 중력의 사슬을 끊고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것은 ‘이카로스 날개’의 힘찬 비상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빗댄 ‘이카로스의 날개’는 미지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憧憬)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역사적 광경을 지켜본 사람은 두 형제와 인명구조대원 5명뿐이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이 시골의 자전거포 주인을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라이트 형제는 신문사에 비행성공을 알리는 전보를 띄웠으나 편집자는 이를 구겨서 던져버렸다. “인간은 날 수도 없고, 설령 그런 묘기를 보인다고 해도 생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력비행기는 당시로는 황당한 발상으로 여겨졌다.

라이트 형제가 성공하기 바로 열흘 전 새무얼 랭글리의 비행시도도 세간의 웃음거리가 됐다. 비행기는 뜨자마자 강물에 처박히고 말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비꼬았다. “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이 실현되려면 아마도 새로운 1000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맞아 비행기는 ‘전쟁의 꽃’으로 피어났고 이때 무려 20만대의 비행기가 제작됐다.

그런데 라이트 형제의 비행은 과연 ‘인류 최초’였을까.

프랑스에서는 클레망 아데르가 라이트 형제보다 13년 앞서 비행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독일 출신의 구스타프 화이트헤드가 1901년 7마일을 날았다는 기록도 있다.

브라질의 듀몽과 뉴질랜드의 피어스도 ‘인류 최초’를 다툰다.

그러나 최초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미국과 유럽에 퍼져 새로운 운송수단이 되었으나 다른 비행기는 그야말로 호사가의 발명품이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마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대량 인쇄기술과 맞물려 새로운 사회 경제적 질서로 이어졌지만 고려의 금속활자는 박물관에 ‘박제(剝製)’돼 있었던 것과 비교된다.

역사(役事)하지 않은 역사(歷史). 역사는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