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양양 낙산사

  • 입력 2003년 12월 11일 16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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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소설 ‘꿈’과 배창호의 같은 제목 영화로 널리 알려진 ‘조신(調信)의 꿈’ 이야기는 강원 양양군의 낙산사(洛山寺)가 그 무대이다.

가까운 곳 세규사(世逵寺)라는 절에서 행정을 맡아보는 신라시대 승려인 조신은 강릉 태수의 딸을 한번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그는 영험하다는 낙산사 관음보살상 앞에 와서 이 사랑을 이루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신분도 신분이려니와 이 아리따운 처녀에게는 이미 혼처가 있었다. 낙심 끝에 어느 날 저녁 조신은 하릴없이 관음상 앞에서 흐느끼다가 깜박 잠이 든다.

거기서부터 꿈 이야기이다. 관음보살도 어찌할 수 없다면 제 스스로 꿈속에서나마 못 다한 사랑을 이루고자 했던 것일 게다.

낙산사 의상대 옆에는 '관음송'이라고 불리는 큰 소나무가 있다. 삼국유사이야기 속의 그 소나무는 아니지만 의상대의 풍광을 좀 더 멋드러지게 만들어 준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길에서 본 모습이다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속초시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 속초공항을 지나고 나면 바로 왼편으로 나지막한 오봉산이 나타난다.

길에서 보자면 바다를 약간 가리는 정도의 높이. 이 산속에 오늘날 전국 4대 관음사찰 중의 하나인 낙산사가 자리 잡고 있다.

큰길가에 거의 잇대 일주문이 있고, 이 문으로 들어가 올라가면 홍예문이 나타나고, 여기를 통해 금당인 원통보전(圓通寶殿) 쪽으로 다가가게 된다.

낙산사 경내는 여느 절에 비해 특이한 점이 있다. 통상 한눈에 보이는 넓은 터에 여러 불전들이 한자리를 이루는 것과 달리, 이 절은 구불구불한 길과 야트막한 언덕으로 몇 구역이 나뉘어 오목조목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사천왕문을 지나면서부터 직사각형의 담을 둘러쳤는데, 원통보전을 모시는 이 담이야말로 낙산사를 보러가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담으로 둘러싸인 마당 공간이 너무 넓으면 퍼져 보이고 너무 좁으면 답답하다. 낙산사 담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그만하면 좋을 만큼 둘러 있어 절묘하기 그지없다.

이 절은 문무왕 11년(671) 의상(義湘)에 의해 창건되었다.

신라의 통일전쟁이 끝난 지 2년 만의 일. 그러니 낙산사 창건은 신라의 통일 축하사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전국에 ‘의상 창건’ 상표를 붙인 절들이 숱하지만, 낙산사는 의상이 해변의 굴에서 관음보살을 친히 만나 그의 명에 따라 지었다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낙산사에 남아 있는 유적이나 유물의 역사는 조선조 초기 이전으로는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세조 때 대대적인 중창사업이 벌어졌는데, 원통보전 앞의 7층석탑(보물 499호)과 동종(銅鐘·보물 479호)이 그렇고, 앞서 소개한 홍예문(유형문화재 33호) 또한 그때의 유산이다.

다만 동종을 비롯해 대부분 유물의 조성연대가 분명해, 당대 양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는 크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낙산사를 보는 핵심은 바다쪽에 서 있는 홍련암(紅蓮庵)에 있다.

건물은 비록 근세에 들어 다시 지어졌다 하나, 낙산사가 생긴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홍련암은 바닷가 굴 입구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 걸터앉듯 세워져 있다. 바로 이 굴 안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의상이 찾아온다.

관음보살을 만난다는 것은 불교신앙의례에서 하나의 완성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은 이 바닷가에 자리 잡고 7일간 거듭 정성껏 기도하여 관음보살의 진신을 직접 뵙게 된다. 관음진신은 의상에게 산 위에 절을 지으라고 했다 한다.

낙산사는 이 명령에 따라 탄생한 절이다. 직접 뵌 관음보살의 모습을 불상으로 만들어 모시고서야 의상은 돌아갔다.

조신이 눈물 흘리며 기도하였다는 관음상이 바로 이것이다. 얼마나 마음 졸이며 갈구한 사랑이었겠는가. 부처를 따르는 이가 사랑 때문에 부처를 버리려는 각오였으니 말이다.

강릉 태수의 딸은 꿈속으로 찾아와, 그와 함께 40년을 산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꿈은 해피엔드가 아니다. 세상살이의 덧없음과 고통으로 몸서리치는 끔찍한 결말이다.

꿈에서 깨보니 불상 앞의 등불은 여전히 깜박거리고, 밤은 고요히 깊어만 가고 있었다. 조신의 머리카락은 그 사이 하얗게 셌다 하고.

일연(一然)은 낙산사가 내려다보이는 설악산 밑 진전사에서 살았다. 아직 소년이었던 일연 또한 이웃 절에 전해 오는 이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그것을 삼국유사에 적고, “수고로운 일생 한 순간이 꿈”이라 노래하기는 한참 뒤의 일이다

고운기 동국대 연구교수 poetko@hanmail.net

:촬영노트: 낙산사 경내가 매우 너른 것에 비해 본당인 원통보전은 아담한 크기다. 원통보전 앞 뜰 정면에 7층탑이 하나 서 있고, 주위를 예쁜 꽃담이 둘러싸고 있어서 눈으로 보기에는 참 좋지만 그 내부가 좁기 때문에 사진에 담기는 까다로운 조건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파노라마 카메라다. 보통 필름보다 두 배 넓게 찍을 수 있어서 좁은 장소에서도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각형의 틀에 넣어 다시 보는 것이 사진인데, 가로 세로 비율을 다르게 하면 이처럼 새로운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요즘 웬만한 카메라에는 파노라마 기능이 다 있으므로 이를 사용해보자. 가로로 긴 화면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양 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tophoto@korea.com

▼'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 낙산사 주변에…▼

의상대는 관동팔경중 하나로 동해안 일출을 보는 명소.

바로 아래 낙산 해수욕장에서는 매년 12월 31일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강원 양양군의 대표적인 관광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의상대에서 해수욕장 반대편으로 바라보면 해수관음상이 있다. 1970년대 말에 점안된 동양 최대 높이의 바닷가 관음상(16m)이다.

한없는 시선으로 동해 바다를 그윽히 바라보는 이 관음보살상에도 아픈 사연이 있다. 불상을 짓기로 처음 발원을 한 것이 1972년 5월. 발원자는 다름 아닌 당시 대통령 부인인 육영수 여사였다. 그러나 2년 후, 불상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발원자는 총에 맞아 비운의 죽음을 맞았다.

낙산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양양군 내에는 동호, 하조대, 남애리 등 이름난 해수욕장이 많다. 아울러 제철은 지났지만 연어축제로 유명한 남대천을 따라 올라가 보는 일 또한 운치 있을 것이다.

양양읍을 지나 홍천으로 가는 56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서면 서림리가 나오는데, 삼층석탑 석등 부도 등이 보물로 지정된 선림원지를 둘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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