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35>玉 石 옥 석

  • 입력 2003년 11월 2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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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石(옥석)

玉-구슬 옥 價-값 가 璧-구슬 벽

虎-호랑이 호 眈-노릴 탐 璞-바탕옥 박

과연 黃金(황금)을 돌같이 볼 수 있을까? 인간이 지니고 있는 탐욕적 屬性(속성)이 그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구슬이라면 가능할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외관상으로 차이가 나므로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다듬지 않은 玉이라면 이번에는 돌과 구별해 낸다는 것이 오히려 쉽지 않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그저 바윗덩어리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중국에서 ‘無價之寶’(무가지보·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의 보물)로 여겼던 和氏璧(화씨벽)이 그런 경우다. 和氏璧에 대해서는 이미 ‘完璧’(완벽)에서 설명한 바 있다. 워낙 고귀해 吉凶(길흉)을 동시에 안겨주었던 구슬이다. 곧 大國이 차지하면 國威(국위)를 더욱 빛낼 수 있었지만 小國이 갖고 있는 날에는 亡國(망국)을 당할 수도 있는 그런 구슬이다. 虎視眈眈(호시탐탐) 노리는 나라가 많았기 때문이다.

和氏璧은 楚(초)나라 사람 卞和(변화)가 발견했다. 어느 날 그는 荊山(형산)에서 사람 머리보다도 더 큰 璞玉(박옥·구슬의 原石)을 주웠다. 신이 난 그는 (려,여)王(여왕)에게 그 璞玉을 바쳤다. 그러나 暴君(폭군)이었던 (려,여)王에게 그것은 바윗돌로 보였다. 그는 卞和를 ‘미치광이’라고 욕하면서 그의 왼쪽 발꿈치를 잘라 버렸다. 卞和는 하늘이 무너지는 挫折(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그 뒤 (려,여)王이 죽고 武王(무왕)이 즉위하자 璞玉을 바쳤지만 이번에는 오른쪽 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다시 세월이 흘러 文王(문왕)이 등극했다. 그는 기어서 荊山까지 갔다. 璞玉을 껴안고는 산 아래에서 며칠 밤낮을 통곡했다. 왕이 사자를 보내 물은 즉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우는 것은 발뒤꿈치가 잘려서가 아닙니다. 玉을 돌로 알고 忠臣(충신)을 미치광이로 여기는 것이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왕이 璞玉을 가져와 玉匠(옥장·옥을 다듬는 장인)에게 다듬게 한 즉 과연 거대한 구슬이었다.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玉石(眞僞, 是非)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비록 겉은 돌에 쌓여있지만 속은 찬연히 빛나는 구슬임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너무 겉에만 신경 쓰지 말고 內實(내실)을 갖추라는 警句(경구)도 되지 않을까 싶다.

또 玉石을 구별하지 않고 함께 취급해버리는 것도 곤란하다. 흔히 싸잡아서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글쎄 구별 좀 하고 볼 일이다.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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