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매치스틱 맨'…소심한 사기꾼 인생에 눈뜨다

  • 입력 2003년 10월 7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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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에 시달리는 사기꾼 로이의 부성애를 다룬 영화 ‘매치스틱 맨’. 리들리 스콧 감독은 황폐한 세계 속에 버려진 인간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게임 형식의 내러티브로 담아냈다. 사진제공 젊은기획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기꾼 로이의 부성애를 다룬 영화 ‘매치스틱 맨’. 리들리 스콧 감독은 황폐한 세계 속에 버려진 인간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게임 형식의 내러티브로 담아냈다. 사진제공 젊은기획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글래디에이터’ 등의 화제작과 블록버스터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번엔 소심한 사기꾼의 소소한 인생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가 연출한 영화 ‘매치스틱 맨’은 싸구려 정수기를 10배도 넘는 가격에 팔아치우는 전문 사기꾼 로이(니콜라스 케이지)의 이야기다. 신경성 강박증을 앓는 로이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자 동업자 프랭크(샘 록웰)는 용하다는 정신과 의사 클라인 박사를 추천한다. 박사와의 상담 과정에서 로이는 자신도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혼한 전처가 낳아 길러온 14세 딸 안젤라에게 부성애를 느끼면서 강박적인 로이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깔끔하고 주도면밀하게 정돈된 이 코믹 드라마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외계 몬스터나 불확실한 미래, 역사와 신화적 세계를 끌어들이진 않지만 변함없이 휴머니즘을 말한다.

지금까지 리들리 스콧 감독은 황폐하고 적대적인 세계 속에 버려진 인간이 ‘나’의 존재감을 찾아가는 과정을 서스펜스로 그려내는데 장기를 보여왔다. 남의 목을 베지 않으면 내 목이 달아나는 콜로세움에 홀로 선 막시무스(글래디에이터), 남성 중심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을 뚫고 절벽으로 차를 몰았던 델마와 루이스(델마와 루이스)도 그랬다.

아기자기한 이번 영화에서도 적대적 상황을 외롭게 역전시키는 휴머니즘이 코미디를 통해 역설적으로 살아난다. 다음은 감독의 스타일이 숨어있는 영화 속 코드들.

▽로이의 복합 증세=로이는 노인이나 불쌍한 서민들을 등쳐먹는 사기꾼이다. 이 같은 직업설정은 로이가 스스로 투쟁하고 극복해야 할 환경적 장치다. 로이는 “단지 자기 욕심 때문에 사람들이 걸려들 뿐”이라고 자위하지만, 늘 양심과 갈등한다.

로이의 내적 투쟁은 한쪽 눈을 계속 깜박이는 틱 장애, 대인공포증, 광장공포증, 결벽증의 복합증세로 형상화 된다. 문을 꼭 세 번씩 닫아야 하는 그의 강박적 라이프스타일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로이의 죄책감을 전해준다. “카펫에 피가 튈까봐 자살도 못하죠?”하고 로이를 조롱하는 동업자 프랭크의 말 속엔 로이의 갈등하는 내면이 축약돼 있다.

▽팔꿈치만 닮았다=리들리 스콧 감독은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게임’을 통해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에선 로이가 벌이는 사기행각 자체가 ‘게임’이다. 또 그런 로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은 사실 더 큰 ‘게임’이다. 로이는 결국 사기란 ‘작은 게임’에선 희생되지만, 인생이란 ‘큰 게임’에선 이긴다. 영화 속 반전은 그래서 아름답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가 ‘게임’이란 암시를 감독은 곳곳에 숨겨놓았다. 로이의 딸 안젤라가 “아빠와 난 팔꿈치만 닮았다”고 한 말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닌 실체적 진실로 드러난다.

정신과 의사 클라인 박사가 숨겨진 딸이 있음을 로이에게 전화로 전해주면서 체스(서양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은 로이가 맞닥뜨린 진실조차 ‘게임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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