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모든걸 보여주마"부산영화제 계기 日영화 상륙작전

  • 입력 2003년 9월 30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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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2일 일본 영화 ‘도플갱어’로 문을 연다. 일본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 이어 10일에는 2001년 일본에서 1000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 ‘냉정과 열정 사이’가 개봉된다. ‘실락원’은 98년 수입 이후 무려 5년을 기다린 끝에 내년 초 빛을 보게 됐다. 모든 영화가 제한 없이 상영될 수 있는 영화제의 ‘프리미엄’과 최근 발표된 정부의 일본대중문화 4차 개방 조치로 우리 앞에 바짝 다가온 일본 영화의 안팎을 살펴본다.》

○부산 영화제

영화제 기간 중 상영되는 일본 극영화 10편 중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개막작 ‘도플갱어’. ‘우나기’ ‘실낙원’ ‘쉘 위 댄스’ 등으로 일본에서 ‘국민배우’로 불리는 야쿠쇼 코지가 주연을, ‘큐어’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구로사와 키요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환자용 로봇의자를 개발하는 하야사키가 어느 날 외모는 같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자신의 분신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키요시 감독의 ‘해파리’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세대간 갈등과 희망을 상실한 듯 무력한 일본 젊은 세대의 자화상을 담았다.

‘자토이치’는 ‘키즈 리턴’ ‘하나비’ 등으로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신작.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은원(恩怨)으로 얽힌 검객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기타노는 이 작품으로 지난 달 폐막된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일본의 아이돌 스타 ‘V6’가 주연을 맡은 사부의 ‘하드 럭 히어로’ ‘링’ 등 공포영화에서 솜씨를 발휘해온 나카타 히데오의 ‘라스트 신’도 두 감독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챙겨볼 만하다.

부산영화제의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이번 영화제를 통해 일본 영화가 과거에 비해 힘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저력이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제 밖의 일본 영화들

‘냉정…’은 한국 시장에서 일본 영화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동명 원작 소설의 인기, 두 연인의 10여년에 걸친 감성적인 러브 스토리,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타케노우치 유타카) 등 흥행 요소를 두루 갖췄다.

초난강이란 이름으로 국내에서도 활동했던 구사나기 스요시가 주연을 맡은 ‘환생’(31일 개봉)과 ‘소림축구’를 야구에 대입한 듯한 코미디 ‘지옥 갑자원’(11월 7일 개봉)도 대중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7주간 1위를 차지한 흥행작 ‘춤추는 대수사선2’은 12월17일 개봉 예정이다.

지금까지 ‘등급의 빗장’에 묶여 개봉되지 못했던 화제작들도 또 다른 관심거리. 야쿠쇼 코지와 구로키 히토미 주연의 ‘실낙원’은 농도 짙은 정사(情事) 장면과 동반 자살이라는 충격적 결말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작품. 97, 98년 일본에서 50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며 당시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러브 레터’로 국내에 적지 않은 팬들을 확보한 이와이 순지 감독의 ‘스왈로우 테일 버터플라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도 개봉이 임박한 상황이다.

○일본 영화의 흥행 파워는?

잔잔한 히트는 가능해도 ‘대박’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실낙원’이나 이와이 순지의 몇몇 작품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면서도 “대중성보다는 실험성이 강한 일본 영화의 특성상 전체적으로 한국 시장의 판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명대 조희문 교수도 “앞서 세 차례 개방을 통해 일본 영화는 호흡이 느리고 내용에서도 우리 관객과 별로 정서가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일본통으로 최근 영화 ‘호텔 코코넛’을 연출 중인 이규형 감독은 이와는 약간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신(新) 의리 없는 전쟁’ 등 야쿠자의 세계를 느와르식으로 다룬 영화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야쿠자 영화’가 한국의 주류 장르가 되다시피 한 ‘조폭 코미디’를 견제할 가능성도 있다.”

‘도플갱어’ ‘해파리’ ‘지옥 갑자원’ 등을 수입한 ‘미로비전’ 채희승 대표는 “최근 개방조치 이후 일본 측이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이라며 “등급 제한이 사라져 한국 시장의 가치가 커진 만큼 스타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 등 일본 영화의 활발한 진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개봉예정 일본영화
10월10일도플갱어구로사와 키요시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
냉정과 열정 사이타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주연
10월31일 환생구사나기 스요시, 다케우치 유코 주연
11월7일지옥 갑자원야구 드림팀을 소재로 한 코미디. 부천영화제 상영작
11월21일사토라레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실사 영화.
12월17일춤추는 대수사선2일본 박스 오피스 7주연속 1위 흥행작
2004년 1월배틀 로얄2생존을 위한 살인과 충격적인 묘사로 논란을 일으킨 작품.
2004년 1, 2월경실낙원야쿠쇼 코지 주연. 일본 개봉 3주만에 500억원 수익 기록.
개봉일정은 배급사의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개방? 에로비디오는 ‘애로’없어요▼

최근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조치가 발표되는 순간 서울 충무로의 ‘유호 프로덕션’(대표 유병호)에서는 긴장과 안도의 한숨이 교차했다.

이른바 16mm 비디오로 불리는 한국 성인 에로영화의 산실(産室)임을 자부하는 이 곳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영화제 수상작이 아닌 ‘18세 이상 관람 가’ 영화도 개방된다는 내용. 이 상황은 곧 진정됐다. 문화관광부에 확인한 결과 극장에서 상영된 작품만 비디오로 출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이 프로덕션 전속으로 활동 중인 이필립 감독(40)을 만나 업계 속사정을 들었다. 최근 그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 아이디어를 딴 ‘푸시와 호세인’을 연출했다. 98년 에로 영화계에 데뷔해 40여 편을 연출한 업계의 중견 감독이다.

―신작 반응은?

“1000여장 정도가 판매됐다. 80년대 괜찮은 작품의 판매량이 1만장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불황이다. 진도희-정세희-류미오-진주희로 이어지던 스타 계보도 끊겼다.”

―‘로망 포르노’로 불리는 일본 성인물에 맞설 경쟁력이 있나?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 모르나. 로망 포르노가 초기에 관심을 끌지 모르지만 두 나라 배우는 신음 소리부터 다르다. 그게 ‘문화의 차이’다.”

그가 밝힌 ‘푸시…’의 제작비는 약 1500만원. 7월 경기 남양주시의 한 펜션을 빌려 1박2일로 촬영을 마쳤다. 통상 2박3일의 일정인 데 좀 빠르게 찍은 편이다. 연출료는 편당 300만원에 남자 배우의 개런티는 40만원, 여자 배우는 70만원 선이었다.

―촬영 중 가장 어려운 때는?

“베드신. 그 짧은 시간에 영화 한 편을 찍는다고 생각해봐라. 전혀 에로틱한 상황이 아니다. 배우나 감독에게 그 시간은 ‘전투’다.”

―일본 영화 개방보다 졸속 제작이 진짜 불황의 원인 아닌가?

“날로 어려워지는 업계 사정이 현장을 열악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불법 성인물이 인터넷을 통해 초등학생에게까지 노출되는 게 현실이다. 대책이 필요하다. 35mm 영화는 밀어주면서 우리는 왜 지원해주지지 않나. 같은 영상문화인데 장르와 주제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금도 꼬박꼬박 낸다. 한국 배우가 금발이나 일본 배우로 바뀌는 게 안타깝지 않나?”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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