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SSRI계열 항우울제는 만병통치약?

  • 입력 2003년 9월 28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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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영화 ‘식스 센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는 아내의 약병을 보면서 자신이 유령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는다. 아내가 복용하는 약의 성분은 SSRI(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일종의 우울증 치료제였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 있는 것으로 알았던 윌리스는 약병을 보고 아내가 남편을 잃은 상실감을 우울증 치료제 복용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SSRI는 뇌 속의 세로토닌 증가에 간여하는 성분으로 미국에서는 ‘사이코 코스메틱(정신 성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세로토닌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 1998년 첫 선을 보인 SSRI는 뇌 속에서 신경과 신경의 통신수단인 세로토닌을 신경말단이 재흡수하지 않도록 만들어 뇌 속의 세로토닌 양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SSRI계열의 플루옥세틴(상품명 프로작)은 미국에서 이를 복용하는 것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 얼마나 유행했으면 ‘프로작 네이션’과 같은 책이나 ‘평화냐 프로작이냐’는 노래까지 등장할 정도였겠는가. SSRI는 우울증 치료제뿐만 아니라 불안장애, 생리 전 불쾌증후군 등의 치료제로도 사용돼 왔다. 최근엔 비만, 조루증, 만성통증 등에도 효과가 확인되면서 ‘만병통치약’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비만치료제로=최근 정신과나 가정의학과에선 비만치료제로 SSRI를 처방하고 있다. 대표적 비만 치료제인 ‘리덕틸’도 원래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되려다 실패한 약으로 체중 감소에 효과가 있는 것이 밝혀지면서 비만치료제로 개발된 것.

프로작은 리덕틸과 비슷하게 뇌에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떨어뜨려 체중 감소를 일으킨다. 리덕틸보다 프로작이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에 동네의원에서는 이를 주로 처방한다.

전문가들은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비만 환자에서 단기적으로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6개월 이상 복용하면 체중 감소의 효과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 복용 중 몸에 발진이나 두드러기가 생기면 즉시 중단해야 된다.

▽조루증 치료에도=기존의 조루증 치료는 국소마취제를 성기에 발라 감각을 무디게 하는 방법이나 신경을 무덤덤하게 만드는 신경안정제, 항불안제 등을 복용하는 방법이었으나 부작용과 낮은 치료효과 때문에 사용이 제한돼 왔다.

SSRI를 복용한 결과 사정이 지연되고 극치감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에는 이 제품이 조루증 치료제로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남성의학클리닉 안태영 교수팀이 23명의 조루증 환자를 대상으로 SSRI 복용군(12명)과 가짜약군(11명)으로 나눠 시행한 연구결과 가짜약군 환자는 18.2%만이 증상호전을 보인 반면 SSRI군은 75%가 증상 호전을 느꼈다고 답했다.

▽기타 질환=SSRI를 복용하는 흡연자의 경우 첫 심장발작 발생 위험이 극적으로 감소했다는 연구결과가 외국 유명 저널지인 ‘순환지’에 최근 보도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조교수인 스테펜 킴벨 박사는 필라델피아 근교에 사는 30∼65세 흡연자 3643명을 대상으로 2년간 심장발작 예방 여부를 조사한 결과 SSRI를 복용한 흡연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장발작 위험이 65%나 감소했다.

SSRI는 쇼핑 중독증 환자에게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로린 코란 박사팀이 ‘일반정신의학지’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SSRI계열 항우울제인 씨탈로프람을 24명의 쇼핑중독자에게 복용시킨 결과 3분 2가 증상 개선의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 SSRI는 폐경기 여성의 60∼70%에게 나타나는 얼굴 화끈거림에도 일부 효과가 있어 현재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 섬유근육통 등과 같은 만성통증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경우도 60∼70% 정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SSRI의 그림자=세상엔 완전한 약이 없다는 것은 SSRI계열의 약물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SSRI계열 약물에 대한 몇몇 부정적 연구결과도 있다.

SSRI계열 중 일부 약은 투약을 중단하기가 어렵고 갑자기 투약을 중단했을 때 초조 불안 등의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영국에선 중독성 관련 논쟁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갑자기 투약을 중단하기보다는 조금씩 양을 줄여가면서 중단할 것을 권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8세 미만의 소아청소년 환자가 SSRI계열 약물을 복용했을 때 자살에 대한 생각 및 자살 기도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보고서의 발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SSRI계열의 항우울제들이 ‘이갈기’와 ‘두통’을 일으키는 데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3가지 약의 미묘한 차이▼

우울증은 불안을 동반한 우울증과 불안을 동반하지 않고 기분만 축 처진 우울증(무기력한 우울증)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불안을 동반한 우울증에 처방되는 약은 주로 ‘세로자트’. 세로자트는 마음이 불안해 안전부절못하는 불안장애에서도 가장 많은 효과를 인정받았다.

불안장애에는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불안한 사회불안장애 △일을 놓으면 불안한 강박장애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황장애 △모든 것이 불안한 범불안장애 △큰 사건을 경험한 후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있다.

한편 무기력한 우울증에는 환자를 활동적으로 만드는 ‘프로작’의 처방이 더 선호된다. 프로작은 불안장애 중 ‘강박장애’에 대해 효과가 있다.

졸로푸트는 이들 약물의 중간에 해당된다. 상대적으로 다른 약보다 소화불량, 설사, 졸음, 피곤함, 흥분, 식욕 감소 등과 같은 부작용이 덜하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다른 신체적 질환이 있거나 다른 약을 같이 복용하는 노인은 졸로푸트를 주로 처방받는다. 졸로푸트는 불안장애 중 강박장애,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에 사용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SSRI계열은 기본적으로 불안장애에 대해선 효과가 비슷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만 미국 FDA로부터 다른 질병에 대한 효능에 대한 허가를 더 빨리 받거나 늦게 받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우울증 환자 치료시 이들 약은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달리 나타난다. 첫 번째 약을 선택했을 때 나타나는 치료효과는 3분의 2 정도. 따라서 1∼2개월 정도 복용한 뒤에도 약의 효과가 없다면 정신과 의사의 상담 뒤 본인에게 맞는 다음 약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SSRI계열 항우울제 약품들
상품판매회사성분분야(미국 FDA 기준)
졸로푸트한국화이자설트라린우울증, 강박장애 ,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월경전 불쾌증후군, 사회불안장애
세로자트글락소스미스클라인파록세틴우울증, 사회불안장애,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월경전 불쾌증후근
프로작한국릴리플루옥세틴우울증, 강박장애, 월경전 불쾌증후군, 신경성 식욕과 항진증
듀미록스중외제약플루복사민우울증, 강박증
씨프람환인제약시탈로프람우울증, 공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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