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주봉신웅이 회고하는 故박동진 명창

  • 입력 2003년 7월 9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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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고 박동진옹의 영정 앞에서 그의 판소리 인생을 회고하고 있는 고수 주봉신옹.-변영욱기자
명창 고 박동진옹의 영정 앞에서 그의 판소리 인생을 회고하고 있는 고수 주봉신옹.-변영욱기자
“머릿속에 판소리가 200시간 분량이나 저장돼 있는데 치매가 오면 큰일 난다며 매일 연습을 하셨지요.”

명창 고 박동진옹(87)의 고수로 30년을 함께해 온 주봉신옹(71)은 소리꾼으로서의 철저한 사명감으로 살았던 박옹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새벽부터 국립국악원에 나와서 점심 때까지 소리를 연습하셨어요. 오후에 다른 일을 보시고는 다음날 아침에 전날 했던 부분에 이어서 소리를 계속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매달 판소리 전체를 한 바퀴씩 돌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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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옹은 1968년 5시간에 걸친 ‘흥부가’ 완창을 시작으로 매년 이어진 박옹의 판소리 완창을 곁에서 함께했다.

“‘흥부가’ 완창 때는 고수가 다섯 명이 붙었어요. 8시간이나 되는 ‘춘향가’ 완창 때는 당시 명동 국립극장 맨 앞줄에 당대의 명창들이 좍 들어앉아 있었는데 박옹은 화장실 한번 안 가고 달걀과 물만으로 허기를 때우며 소리를 계속했어요. 저도 좀 쉬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소리를 계속 하시겠다니 북을 놓을 수도 없었지요.”

박옹은 이렇게 ‘흥부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등 판소리 5마당을 다 완창한 후 ‘가루지기타령’ ‘배비장전’ ‘숙영낭자전’ 등 가사만 전해지던 작품까지 되살려서 판소리 12마당을 모두 완창했다. 그리고는 ‘충무공 이순신전’ ‘예수전’ 등 새로운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갔다.

“현장을 직접 가봐야 판소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며 ‘적벽가’를 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에도 중국을 세 번이나 찾아갔었다고 해요. ‘충무공 이순신전’을 만들 때도 통영에 세 번, 여수에 두 번을 답사하셨어요. 그분의 판소리에서 유난히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노력 때문이지요.”

박옹은 소리꾼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건강관리에도 철저했다. 그의 몸은 박옹 개인의 몸이 아니라 천직으로 주어진 ‘소리꾼’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술도 담배도 전혀 안 하셨어요. ‘소리꾼은 밥을 잘 먹어야 한다’며 식사를 꼭 챙기셨고 제자들을 만나서도 ‘밥 잘 먹으라’는 이야기부터 하셨지요. 그렇게 건강하게 사셨기 때문에 1999년 부인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어요.”

박옹은 부인의 임종을 곁에서 지켰고 부인이 사망하자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제자들의 만류로 다시 건강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자신을 곁에서 돌봐주던 부인이 떠난 후 기력이 약화돼 결국 세상을 떠났다.

박옹과 주옹은 내년 3월 ‘논개전’을 발표하기로 하고 최근까지도 준비를 계속해 왔다.

주옹은 “3시간40분짜리 작품을 다 만들어 놓고도 못하고 가셨으니 정말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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