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담]제약회사 남녀가 접한 중년의 性

  • 입력 2003년 5월 15일 16시 48분


코멘트
“발기부전 남자들, 정말 고민이 많더라고.” “여자들이 폐경기에 겪는 고통도 무시 못하지.” 양은영 대리(왼쪽)와 정종석 과장이 사무실에서 주고 받는 남녀의 성(性)에 관한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솔직하고 현실적이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발기부전 남자들, 정말 고민이 많더라고.” “여자들이 폐경기에 겪는 고통도 무시 못하지.” 양은영 대리(왼쪽)와 정종석 과장이 사무실에서 주고 받는 남녀의 성(性)에 관한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솔직하고 현실적이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 한국릴리에 근무하는 정종석 과장(33)의 사무실 책상에는 자궁 모형이 놓여 있다. 그가 고객의 전화를 받으며 자주 하는 질문은 “마지막 생리는 언제 하셨습니까”.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양은영 대리(29·여)의 책상 앞에는 남자 생식기 해부도가 붙어 있다. 미혼의 양 대리가 전화로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 역시 예사롭지 않다. “그 약을 먹으면 계속 발기된 상태로 있냐고요? 아니에요 선생님. 한 번 사정(射精)하고 나면 다시 평상시 상태로 돌아가요.”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화학과 출신인 정 과장은 골다공증 치료제를, 약대를 졸업한 양 대리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맡고 있는 마케팅 담당자. 고객과 통화하며 각자 내뱉는 단어들이나 두 사람이 칸막이 너머로 나누는 성(性)에 관한 ‘일상적인’ 얘기는 종종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남자가 이야기하는 여자의 성, 여자가 이해하는 남자의 성은 어떻게 다를까. 두 사람이 일을 하며 맞닥뜨리는 한국 중년 남녀의 성에 관한 고민은 어떤 모습일까. 늦봄 오후 두 사람의 ‘사무실 대화’를 엿들었다.

● ‘고개’ 숙인 남자에 관해

양은영 대리=요즘은 길을 가다 남자와 마주치면 눈길이 ‘거기’로 향할 때가 많아. 제대로 기능은 할까….

정종석 과장=중요한 문제지.

양=문의 전화를 받아보면 알지.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에 더 이상 ‘텐트’를 안 친다, 그러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정=중년 남자들은 발기부전이 되면 ‘이제는 즐거움을 못 느낀다’는 것보다는 ‘남자 구실을 못한다’는 점에 더욱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 아내가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까 걱정도 하고.

양=맞아. 30대까지는 섹스를 하면서 여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하지만 40대가 되면 능력 과시는 고사하고 어떻게 하면 부인을 만족시킬까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된다며?

정=노련해지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양=속내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여러 번 못하니까 한 번 할 때 잘 하려고 하는 거잖아. 성에 대해 자신 있는 남자들은 겉보기에도 자신감이 넘쳐.

섹스 능력이 아침 밥상을 좌우한다면서? 어떤 환자는 발기부전 치료를 받은 뒤로 정말 반찬이 달라지더래. 반찬 가짓수를 보면서 지난 밤에 좋았구나, 안 좋았구나를 가늠해본다고….

정=그래서인지 아내들이 권해서 발기부전 치료를 받는 남자들도 많대.

양=그런 걸 보면 남자들의 애환이 느껴져. 여자들은 성기능에 큰 비중을 안 두는데 남자들은 그걸 위해 부단하게 투자를 하지. 눈물겨울 정도야.

정=그래도 발기부전 치료를 받겠다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지.

양=맞아. 발기부전이 된 뒤로 병원을 처음 찾을 때까지 통상 2년 정도 걸린다는 얘기가 있어. 2년 동안은 아무한테도 얘길 못하고 혼자 고민만 한다는 거야.

정=정작 성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나이가 되면 그런 얘기를 내놓고 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해.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 있잖아. 한 50대 남자 의사는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아주 공감했다”고 얘기하더라고. 젊은 사람들은 그 심정을 모를 거라면서.

● 폐경이 여자에게 주는 의미

정=남자들의 발기부전에 해당하는 게 여자들의 폐경이야. 폐경기에 여자들은 침울해지곤 하지. ‘이제 여자로서의 기능이 끝났구나’라는 생각에서…. 어떤 사람은 “나는 여성임을 느끼기 위해 생리를 계속 하고 싶다”면서 그런 약이 없냐고 물어보기도 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상적인 심리상태로 돌아가고 예전보다 더 성욕이 커지기도 해.

양=그런 잣대로만 보면 남자의 발기부전이 훨씬 더 가혹한 것 같아.

정=그래도 폐경기에 즈음해선 고통이지. 호르몬 분비가 안 돼서 질 안이 건조해지고, 그래서 성교 때 아프니까 섹스를 피하게 되고….

양=그 정도 증상은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잖아.

정=그렇지. 호르몬 요법도 있고 윤활제도 있고. 그런 문제만 해결되면 여자들은 섹스에 더 적극적이게 돼. 여성 호르몬 분비가 줄어들고 남성 호르몬 분비가 늘어 성욕이 높아지는 거지. 약에 대해 문의를 해오는 중년 여성들 중에는 ‘그 약을 복용하면 섹스에 도움이 되는가’ 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양=남자건 여자건 그 나이가 되어서도 섹스에 대한 욕구는 여전한 것 같아. 하긴 여자의 경우에는 폐경 이후로는 임신 걱정이 없으니까 더욱 능동적으로 섹스에 임할 수도 있겠지. 문제는 몸이 안 따라준다는 점이겠지만.

정=남자의 고민이 발기부전이나 조루라면 여자의 고민은 불감증이지. 이 일을 하면서 여자의 성생활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 성욕은 있는데 섹스를 해도 느끼지 못한다, 얼마나 불행한 일이야. 남성용 발기부전 치료제만 나올 게 아니라 여성의 불감증을 치료하는 약도 나와야 하는데….

양=만약 약이 나온다면 말초 신경계통의 약이 아니라 중추 신경을 조절하는 약이 나오겠지.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데는 뇌가 많이 작용하니까.

정=여성의 불감증은 인류사적으로 오래된 일이야. 원시 사회 때는 자신은 만족을 느끼면서 여자는 안 느끼게 하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로 인정받았대. 여자가 느낄 때쯤 해서 딱 끝내 버리는 거지.

양=조루네.

정=거기서 조루가 유래됐다는 얘기도 있어.

● 섹스에 대한 남녀의 인식 차이

정=섹스를 할 때 남자는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 게 의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서로가 만족을 느끼는 게 좋은 건데.

양=남녀가 모두 만족하기에는 신체적 구조상 한계가 있지. 섹스를 시작하면 남자는 사정만 하면 무조건 오르가슴을 느끼잖아.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잖아. 그러니까 남자가 좀 더 신경 써서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여자들이 그런 식으로 수동적인 것도 문제야. 남자가 리드를 하는 데 익숙하다보니 여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양=남자들도 잘못된 인식이 많아. 페니스(penis)는 클수록 좋고, 오래 지속해야 하고, 이런 것에 관심을 많이 갖잖아. 성기 키우는 수술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만큼 남자들은 섹스라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 남자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정=남자들은 섹스에만 신경을 쓴다고 여자들은 생각하지만 그것도 오해야. 아무리 예쁜 여자가 옷을 벗고 덤벼들어도 못 본 척 할 수도 있어. 남자들이 좀 더 본능적이긴 해도 완전히 이성(理性)을 배제하는 건 아니지.

양=하지만 예쁜 여자가 코 앞에서 나체로 있으면 발기는 하잖아. 발기는 자율신경에 따른 반응이니까.

정=발기가 본능이라면 그걸 죽이는 게 이성이지.

양=남녀의 성에 대한 인식 차이는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일 수도 있어. 어릴 때는 물론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야. 이 일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나는 발기부전이 된다는 것은 성기를 잘라내도 모를 만큼 그 조직이 죽어버리는 건 줄 알았어.

정=그나마 여자들은 생리를 시작하면서부터 성에 대한 기초 지식은 배우잖아. 남자들은 중학교 때 음란 잡지를 통해 성에 대해 알게 되는 게 고작이야. 여자의 성에 대해선 제대로 배우는 바가 전혀 없지.

양=그런 잡지를 보면 엄청 ‘큰’ 남자들이 나오지. 야한 영화를 보면 여자들은 항상 비명을 지르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남자들이 성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

정=맞아. 실제 해보니까 상대 여성이 별 반응이 없다, 그러면 남자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거든.

양=문제는 그런 잡지나 포르노나 하는 것들을 남자들은 과도할 정도로 보는데 여자들은 접할 기회가 없다는 거야. ‘지식의 격차’가 생기는 거지. 그리고 여자들이 그런 것에 궁금해 하면 남자들은 ‘너무 밝힌다’고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

정=어쨌든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한 성생활을 하기 위해선 젊었을 때의 생활 습관이 중요해.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건 금연이야. 흡연은 발기부전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거든.

양=여자 쪽도 마찬가지야. 흡연은 조기 폐경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 흡연이나 기타 이유로 30대에 폐경이 오는 여자도 있다니까. 조심해야지.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