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내식으로 산다" '산사나이' 성락건씨

  • 입력 2003년 4월 27일 14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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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한 번쯤 찾아봤거나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산 사나이' 성락건(成樂建·58)씨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많은 이들은 그를 '기인(奇人)'이라고 부른다. 머리카락 휘휘 날리는 외모도 그렇지만 산과 벗하여 거리낌 없이 살아온 삶의 방식 때문이다. '죽은자(竹隱者)' '허풍도사' 같은 애칭도 그래서 생겼다.

60년대 초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군에서 제대한 뒤 복학하지 않고 서울시청 공무원이 됐다. 가정형편 탓이었다. 공무원 생활 10년에 그는 염증을 느꼈다. "개성을 말살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부속처럼 살아가기를 강요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내 식으로 살자'며 고향인 경남 거창으로 내려왔다. 평소 산을 좋아했던 그는 모든 것을 밀쳐두고 산을 올랐다. 국내의 산들은 물론 히말라야 원정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일본 북알프스는 적설기에 등반했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집안 살림은 처녀시절 산에 미친 성씨의 '꼬임'에 빠져 결혼했다는 부인 남경옥(南京玉·50)씨의 몫이었다.

그는 '산 올라 삶이 기쁘고 산 있어 죽음마저 고맙다' 등 두 권의 체험적 시집도 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산을 꼼꼼히 살펴 만든 등산 안내서 '남녘의 산'은 그의 역작이다.

이런 성씨가 20여년의 '방랑' 끝에 최근 지리산 삼신봉 자락인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와 황토로 30평 남짓한 찻집 겸 문화공간인 '다오실(茶悟室·055-883-8618)'을 2년 걸려 손수 짓고 최근 문을 연 것.

그는 청학동 문화지도와 청학동 연구회를 만드는 것을 첫번째 과제로 삼고 있다. 청학동에 사는 '선사(禪師)'들의 집과 토굴의 위치, 화가와 도예가의 거처, 바위와 샘 등이 담긴 지도를 만들기 위해 기초작업도 끝냈다. 그가 처음으로 개념을 정리한 '목적산행(테마산행)'을 확산시키기 위해 등산꾼들과 함께 계절에 따라 약초 버섯 샘물 명상토굴 찾기와 도인 찾아뵙기 산행 프로그램도 마련할 작정이다. 다음달 18일엔 청학동 총각과 진주시내 낭자 6명씩을 데리고 지리산 삼신봉에 오르는 '맞선보기 산행'도 계획하고 있다. 40대 후반부터 죽음을 소재로 써오고 있는 소설을 완성하는 것도 그의 소망이다.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온 성씨. 산에 가는 것이 처갓집 가듯 당당해야 하고, 여름에 찬물을 마시듯 부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가진 것이 없어도 더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아니겠느냐"며 맑게 웃었다.

지리산=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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