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고고학 탐정들'…어떻게 역사를 추리할까

  • 입력 2003년 4월 25일 17시 36분


한 고고학자가 북아메리카의 '들소 도살 유적지' 에서 발견된 들소의 뼈를 조심스럽게 추려 내고 있다.(오른쪽) 고고학자들은 들소의 뼈를 통해 8500여년 전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생활상을 추론해냈다. 사진제공 효형출판
한 고고학자가 북아메리카의 '들소 도살 유적지' 에서 발견된 들소의 뼈를 조심스럽게 추려 내고 있다.(오른쪽) 고고학자들은 들소의 뼈를 통해 8500여년 전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생활상을 추론해냈다.
사진제공 효형출판
◇고고학 탐정들/폴 반 엮음 김우영 옮김/352쪽2만5000원 효형출판

한국 고고학계에 떠도는 우스개 같은 실화 한 토막. 경북 경주 부근 신라시대 고분 발굴 현장에서 발굴팀의 설명회가 열렸다. 책임을 맡은 고고학자가 발견된 유물을 설명하면서 “당시 왕실에서는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때 청중 한 사람이 손을 들더니 “직접 보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고고학자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할 말을 잃었고, 이내 설명회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 고고학자가 실제로 당시 생활을 봤을 리가 없다. 고고학이란 다만 발굴한 유물을 통해 오랜 역사를 ‘추리’하는 학문이다. 어찌 보면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과거의 사건과 행위를 재구성하고, 범죄를 해결해 내는 탐정의 역할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의 제목(원제 The Archaeology Detectives)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탐정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자는 추론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다. 그러나 추론은 사실(유물)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고학자의 이론은 짐작에 불과하다.

이 책은 고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세계적인 발굴과 발견, 유적지를 소개하면서 고고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과거를 ‘재생산’하는지 보여준다.

북미 대륙 ‘대평원(Great Plains)’의 ‘도살 유적지’를 통해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의 생활상을 알아낸 것은 고고학의 ‘접근법’을 잘 설명해준다. ‘도살 유적지’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매머드나 아메리카 들소를 죽인 곳. 콜로라도 동부에 있는 올센-처벅(Olsen-Chubuck) 유적은 약 8500년 전 원주민들이 200여마리의 들소들을 협곡으로 몰고 가 죽인 곳이다.

하지만 1930년대부터 시작된 이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은 1958년까지 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무기 표본을 수집하는 데 치중됐었다. 1958년 콜로라도대 박물관의 고고학자 조 벤 휘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이 유적지에 접근했다. 휘트씨는 죽은 들소의 유골을 통해 당시의 ‘사건’을 추론해 냈다. 휘트씨는 죽은 소 더미에서 어린 새끼의 뼈가 나온 것에 착안해 들소들이 5월 말에서 6월 초에 죽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들소들은 늘 이 시기에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냥꾼들이 바람을 등지고 소에게 접근했을 것이라는 추리를 통해 바람의 방향도 알아냈고, 유골의 잘린 자국과 훼손 상태를 통해 당시 원주민들이 등 부위와 혀를 특히 좋아했다는 구체적 사실까지 알아냈다.

이 책은 이 외에도 마추픽추, 트로이, 둔황 등 주요 유적지 50군데를 돌며 현장의 고고학적 성과를 설명했다. 고고학에 관해 ‘깊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의 짧고 간결한 설명에 아쉬움이 남겠지만, 단지 호기심 충족의 ‘첫발’을 떼는 것이 목적이라면 훌륭한 가이드가 된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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