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그림 그리는 고릴라'

  • 입력 2003년 3월 18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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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고릴라/마이클 렉스 글 그림 김장성 옮김/31쪽 7500원 사계절(4∼6세)

어느 동물원에 그림 그리는 고릴라가 살고 있다. 그 고릴라는 유명해지고 그의 그림은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 돈을 많이 번 고릴라는 그 돈으로 뭘 할까 고민하다 옆의 동물들에게 물어본다.

그 돈이 있다면 침팬지는 그네 탈 큰 나무를, 하마는 헤엄칠 큰 강을, 사자는 넓은 초원을, 물개는 드넓은 바다를 사겠다고 말한다. 고릴라는 마침내 동물원을 통째로 사들인다. 그리고는 동물원을 커다란 놀이터로 만들고 동물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 준다.

고릴라가 그림을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림이 잘 팔려 많은 돈을 벌고 세계 각국에서 전시까지 한다니! 하지만 너무 따지지 말자. 이건 그냥 재미있자고 보는 만화 같은 책일 뿐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황당한 설정이라 해도 녹록지 않은 성찰이 묻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동물원에 대해 우리 한번 생각해 보아요’ 라고 말하는 듯하다.

물론 아이들은 동물원을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아기가 태어나 유모차에 태울 수 있게 되면 서둘러 어른들은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간다. 하지만 이 아가들이 과연 호랑이니 기린이니 희귀 동물들 때문에 동물원을 좋아할까? 내 경험에 의하면 아가들은 강아지나 오리만 봐도 좋아한다. 아니, 그냥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좋아한다.

결국 동물원이란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구실 아래,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동물들의 거대한 전시장일 뿐이다. 동물들 입장을 조금이라도 고려해 보면 이건 정말 할 짓이 못된다. 사람들 좋자고 세계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잡아온 동물들을 가두어 놓고 구경하는 것은 너무도 반자연적이다. 게다가 유럽이 식민지를 넓혀 나갈 때 아프리카며 아시아의 오지,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나아가 남극에 이르기까지 돌아다니며 잡아온 동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시작된 동물원은 태생부터가 수상쩍다.

무슨 학자들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일제가 남의 나라 궁궐에 동물원을 들어앉혀 놓고 좁은 철조망 우리 안에 동물들을 사육하며 전시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동물원이란 너무도 제국주의적인 공간이다.

과도한 인간중심주의와 제국주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짝패인 것일까?

이렇듯 이 책은 이야기 뒤 끝에 동물원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 하여 반성의 공간을 남겨 둔다. 하지만 이런 걸 다 빼도 이 책은 장점이 많다. 흔히 아이들 보는 그림책은 그림과 이야기가 단순 선명하면서도 함축적이고, 반복적인 운율이 있어 아이들이 흥겹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는데, 이 책은 무엇보다 이런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재미가 가득하다. 재미와 교훈이 함께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유쾌한 책이다.

주미사 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불문학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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