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취재시스템 "청와대처럼"

  • 입력 2003년 3월 14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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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14일 청사 회의실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원대연기자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14일 청사 회의실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원대연기자
언론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가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제를 도입해 취재 여건을 대폭 바꾼다. 청와대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브리핑제 등으로 취재 시스템을 전환한 이래 행정부처가 이를 따른 것은 문화부가 처음이다.

언론학자들은 일견 선진국 방식으로 보이는 취재 시스템의 변화가 행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한국의 경우에는 ‘신종 언론통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장관은 14일 장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브리핑 방식으로 갖고 새로운 취재 시스템 방안을 직접 밝혔다.

이 장관은 일간지와 방송사 위주로 된 출입기자제를 등록만 하면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바꿔 신생 인터넷 매체 등의 출입을 가능토록 했다. 기자실도 브리핑룸으로 바꾸고 매주 수요일 정례 브리핑을 실시하기로 했다. 필요할 경우 수시 브리핑도 실시하기로 했다.

기자의 사무실 방문 취재는 금지된다. 개별 취재를 원하면 공보관에게 의뢰해 담당자와 브리핑실 옆의 취재 지원실에서만 만날 수 있다. 전화나 e메일을 이용한 취재는 가능하다.

이 장관은 “문화부는 많은 취재가 전화로 이뤄지므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화부 직원들이 기자의 취재 내용을 모두 공보관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내부 규칙을 정해 사실상 전화 취재도 제약을 받게 됐다.

이 장관은 ‘취재실명제’도 거론하며 ‘문화부 관계자에 따르면…’과 같은 익명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가 거론할 한계를 넘어섰다는 의견이 출입기자들의 지배적 견해였다.

이 장관은 취재시스템 변화에 대해 “정부와 언론이 유착하지 않고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부처별 사정에 따라 원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청와대의 취재시스템 변경안을 참고하지 않았다”면서도 “언론관에 대해서는 내가 노 대통령의 ‘분신’이나 다름없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우룡(金寓龍·언론학) 한국외대 교수는 문화부의 취재시스템 변화에 대해 “취재원에 대한 방문 취재 금지와 사전허가제는 새로운 언론통제의 우려를 낳고 있다”며 “공보관의 허가를 받아야 취재할 수 있다면 언론의 마감시간을 고려할 때 시간에 맞춰 취재원에게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민웅(李敏雄·언론학) 한양대 교수는 “한국 대화 문화의 특성을 감안할 때 전화 취재는 한계가 있어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해야 한다”며 “장관이 기자와의 전화 통화내용도 보고하도록 한 이상 당장 내일부터 공무원들은 입을 다물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진홍(鄭鎭弘·영상이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종래의 특정 매체뿐 아니라 인터넷 등 모든 미디어에 기자실을 개방한다는 원론적인 취지는 이해하나 취재원에 대한 상시적인 접근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한나라 "개방하는듯 하며 취재제한 의도"▼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14일 논평을 통해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발표한 ‘홍보업무 운영방안’에 대해 “취재를 개방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취재를 제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취재원의 익명성 보장을 이유로 언론에 정부 부처의 공식 브리핑말고는 취재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정부 부처가 알리고 싶은 내용만 들어서 기계적으로 보도하라는 얘기”라며 “취재원 익명성 보장은 언론 스스로 판단할 문제로 언론의 취재영역을 축소시키려는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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