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選擧(선거)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7시 50분


選-고를 선 僚-벗 료 僕-종 복

豪-호걸 호 濫-넘칠 람 借-빌릴 차

중국이나 우리나 옛날에는 君主(군주) 일인의 국가였다. 곧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帝王(제왕)의 소유였으며 그는 無所不爲(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나라를 한 사람이 다스려 나갈 수는 없는 법. 帝王을 頂点(정점)으로 탄탄한 官僚(관료)조직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어 그를 補佐(보좌)하였다. 그래서 막스 베버같은 이는 과거 中國의 정치형태를 ‘家産官僚主義‘(가산관료주의·Patrimonialism)라고 규정했다. 자연히 朝廷(조정)은 皇室(황실)의 확대판이며 官僚는 君主의 忠僕(충복)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官僚를 선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選擧는 바로 漢(한)나라 때의 인재선발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2000여년 전부터 選擧制度를 실시했던 민주국가였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 그것은 ‘選擧’의 의미가 지금과 달라도 한 참 달랐기 때문이다.

選擧는 ‘選拔’(선발)과 ‘薦擧’(천거)의 복합어다. 그러니까 郡守(군수)가 사람을 選拔하여 朝廷(조정)에 薦擧하면 관리로 任命했던 제도다.

대체로 ‘賢良方正’(현량방정·品性이 어질고 행동이 方正한 자·약칭 賢良)과 ‘孝廉’(효렴·孝子廉吏의 준말로 효심이 지극하고 청렴한 자) 2가지를 薦擧하도록 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제도도 운용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無用之物(무용지물)과 다름없는 법. 選擧의 본디 취지는 理想(이상)에 불과했을 뿐, 실제는 郡守(군수)가 지방의 權門豪族(권문호족)들과 結託(결탁), 그들의 子弟들만 추천함에 따라 공평성이 결여되고 각종 부정의 온상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東漢末에 오면 마구잡이 薦擧로 소위‘濫擧’(남거)현상이 출현하게 되어 결국 漢나라가 망하는 契機(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에서 ‘選擧’는 亡國(망국)을 초래했던 관리선발방식이었을 뿐이다.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唐(당)나라 때부터 정식 시행되기 시작한 科擧(과거)다.

이렇게 엉뚱한 단어가 제 뜻에 맞지 않게 사용되게 된 이유는 東西洋(동서양)의 문화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즉 서양식 문물이 도입되면서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하자 엉겁결에 기존 단어를 借用(차용)한 결과다. 본디 政治를 뜻했던 ‘經濟’니 天子를 의미했던 ‘民主’도 같은 예라 하겠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選擧, 그것도 대통령을 뽑는 選擧가 머지 않았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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