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현란한 몸놀림…빈약한 상상력 발레 '러시안 햄릿'

  • 입력 2002년 12월 4일 18시 18분


《보리스 에이프만, 그는 어쩔 수 없는 리얼리스트였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발레 ‘러시안 햄릿’이 보여준 서술적 묘사, 분명한 줄거리, 무용수들의 절대적 기량 요구, 비극의 극적인 강조 등은 분명 안무가의 성격을 스스로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기존 러시아 정통 발레와 아무리 다르다고 주장해도 안무가 자신이 이미 사회주의 국가에서 반평생을 넘게 산 사람임을, 그리고 보고 배운 것이 고전 발레인 그의 예술세계 근저에 깔린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하기사 그런 배경을 안고 있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모더니스트나 그 이상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기존 러시아 발레에서 분명 한 발 더 나아갔다. 원작이 안고 있는 극적 면모들을 더더욱 강조하면서 한 개인의 심리묘사와 상황 변화 등을 깊이있게 처리한다. 분명 그는 이전의 러시아 선배들을 능가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

작품 속에서는 효과적 표현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러시아의 소재를 접목시켜 원작의 내용을 조금 뒤틀었다. 여왕은 죽지 않고 햄릿도 살아남는다. 그러나 변화된 발레의 줄거리는 분명하고 그 내용에 충실하다. 원작을 다른 형태로 잘 재현했지만 고전을 고전에 머무르게 했을 뿐이다. 발레 작품화한 고전이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그에게 물어야한다. “왜 당신은 2002년에 ‘햄릿’을 들고 나왔는가”라고. 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다.

사실 ‘햄릿’이라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발레화하면 이미 대중과의 접촉에 유리한 코드를 우위선점할 수 있다. 관객들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언어를 대신하는 의미전달을 쉽게 체득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런 경험은 다른 장르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움직임만으로도 극의 전개가 이해되고 있다는 것,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하지만 알고 있던 상식을 답안지 번호 맞춰 보듯이 보는 것이 춤공연의 모든 것은 아니다.

관객의 상상력을 믿고 여지를 주는 것, 그 역시 안무가의 자신감이며 미덕인데, 에이프만은 너무 성실했다. 또 불안했다. 그래서 그는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그것도 상당히 친절하게. 하지만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다. 그 이상은 없다. 춤 공연은 언어 이상의 것, 그 아우라(Aura·독특한 분위기)를 즐기고 상상하는 묘미가 분명 존재해야 한다.

물론 무용수들의 기량은 뛰어났다. 그들의 현란한 몸놀림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다 못해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의 신체가 연출할 수 있는 모든 기술과 힘을 전부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리스 에이프만은 누구보다 기량 제일주의자요, 사실주의 작가였다. 그는 어쩔 수 없는 리얼리스트였다.

(5일까지 오후 8시 ‘러시안 햄릿’/6일 오후 8시, 7일오후 4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8일 오후 3시, 7시 ‘돈 키호테’. LG아트센터. 2만∼6만원. 02-2005-0114)

박 성 혜 월간 ‘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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