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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10일 14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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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京都)의 정밀기기제작회사인 시마즈(島津)제작소의 분석계측사업부 연구원인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43). 그는 9일 오후 난데없는 국제전화에 깜짝 놀랐다. ‘내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라니….’ 그는 귀를 의심했다. 영국 파견근무 1년여가 아니었더라면, 영어로 전하는 수상통보도 못 알아들을 뻔했다.
기자회견에도 그는 작업복 차림으로 끌려나오듯 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박사도 대학교수도 아닌데 노벨상이라니”라며 마냥 겸연쩍어했다.
역대 노벨 화학상 수상자 가운데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은 처음. 그는 도후쿠(東北)대 전기공학과 출신의 학사. 화학 분야는 도야마 고교 2, 3학년 때 관심을 가진 정도였고 입사해서야 손을 댔다. 일본인으로서 12번째 노벨상 수상자인 그는 일본 최초의 노벨상을 42세 때 받은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물리학) 다음으로 젊다.
화학상이 발표된 이날 일본 종합과학기술회의에는 수상내용을 해설하기 위해 2000년 화학상 수상자인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쓰쿠바대 교수 등 저명 학자 3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나카씨가 누군지조차 몰랐다. 아사히신문은 “이런 사람을 찾아내 추천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보도했다.
그는 평소 머리 감는 데 빼앗기는 시간이 아까워 아예 삭발해버릴 정도로 연구에 열심이지만 노벨상 수상에 대해선 “운이 좋았다”며 무척 겸손해했다.
단백질 질량을 레이저로 분석할 때 시료 상태 그대로 쏘면 이온화되어 시료가 흩어지고 만다. 이 때문에 첨가물질이 필요한데 그는 글리세린이나 코발트를 첨가물질로 써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코발트 위에 글리세린을 떨어뜨리고 말았는데 퍼뜩 ‘혼합해서 실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 실험은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개발한 ‘소프트레이저 탈착법’으로 인해 요즘엔 대학생 정도면 쉽게 단백질 분자량을 측정할 수 있게 됐다. 단백질 질량분석은 단백질을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거나 암(癌)을 조기 진단하는 데 기초가 된다. 그는 자신의 이론과 기술을 대단찮은 것으로 생각해 국제특허 등록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이 기술로 받은 돈은 회사가 일본 특허 출원을 하면서 보상금으로 준 1만1000엔(약 11만원)이 전부다.
83년 시마즈제작소에 입사한 그의 직급은 과장도 부장도 아닌 ‘주임’. 그래서 “이런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일본 기업과 사회 풍토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 자신은 동기들이 승진할 때 “연구에 몰두하겠다”며 승진시험을 거부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일본의 교육제도를 비판해 달라고 하자 그는 “그렇게 고상한 화제를요? 머릿속에 든 게 없어서 별로 할 말이….” 하며 웃어 넘겼다. 아내(37) 역시 몰려온 기자들에게 “집에선 일 이야기를 통 안 하니까….”라며 얼굴만 붉혔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