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MBA’의 힘, 리더십을 배운다

  • 입력 2002년 10월 3일 17시 12분


지난달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 입시설명회(왼쪽 위).오른쪽 위는 HBS캠퍼스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베이커라이브러리'이며 아래 사진들은 HBS학생들. -전영한 기자.사진제공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지난달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 입시설명회(왼쪽 위).오른쪽 위는 HBS캠퍼스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베이커라이브러리'이며 아래 사진들은 HBS학생들. -전영한 기자.사진제공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을 졸업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대답해 보죠. HBS를 졸업한 사람은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답변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버드’라는 타이틀을 얻는 게 가장 큰 수확이죠. 그 타이틀만으로 덕을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신촌 연세대 동문회관 대회의실. 100여명의 지원자가 모인 가운데 HBS의 경영학 석사(MBA) 과정 입시 설명회가 열렸다. 이맘 때면 미국 각 대학의 MBA 설명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올 들어 가장 먼저 열린 이날 설명회에는 HBS의 입학사정관 나비드 라만(29)이 나왔다.

지원자들은 대부분 양복 차림의 회사원이었고 대학생인 듯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영어로만 진행된 이날 설명회에서 지원자들은 라만씨를 비롯해 HBS 출신의 류재욱씨(34·네모파트너스 부사장), 이철주씨(30·UBS캐피털 부장), 김민호씨(30·매킨지 컨설턴트)에게 입시 정보와 HBS 생활에 대해 질문했다.

●왜 HBS인가

라만씨는 “차세대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은 도전해 보라”고 말했다. 세계 각지에서 각자 소속된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공헌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양성하는 게 HBS의 교육 목표라는 것. 이를 위해 HBS는 선발 과정에서 전직이 무엇이었나보다는 리더의 자질이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따진다. ‘평균 수준의 은행가’보다는 ‘평균 이상의 군인’ 출신을 뽑는다는 것.

HBS의 커리큘럼이 마케팅이나 회계 같은 분야보다 일반경영(general management)에 중점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위주의 수업 방식도 리더로서의 자질을 기르기 위한 것. 이철주씨는 “적절한 팩트와 주장을 동원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김민호씨 역시 “케이스 스터디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한 교육 방식이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그런 교육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든 두려움 없이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고, 사람들을 이끄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

‘하버드 후광 효과’에 대해 류재욱씨는 “HBS를 졸업하자 사람들이 일단 한 수 위로 여기고 나를 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수를 가르치는 학생들

HBS는 인종과 민족을 초월해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선발한다. 라만씨는 “케이스 스터디를 위주로 하는 수업에서 그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다른 학생들의 스승이 되고, 그들의 경험이 수업의 교재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클래스에는 걸프전에 참전했던 미국 육사 출신의 군인,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유명 시사프로그램 프로듀서 출신 등이 있었다. 이씨는 “수업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학생들 중 적어도 한 명은 그 주제에 정통한 사람이 있다”면서 “교수는 뒷전으로 물러나 있고 주제에 정통한 학생이 수업을 이끌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류씨는 “한국의 외환위기와 삼성전자의 성공전략 등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때는 한국 출신 학생들이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친절한 ‘공부벌레’들

이씨가 HBS에 입학해서 처음 느낀 점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동물’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 그는 “친절하게 동료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책에만 파묻혀 살고 경쟁심으로 가득찬 ‘공부벌레’만은 아니었다는 것.

학생들은 수업 이외에 각양각색의 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진다. ‘경영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 ‘벤처 창업을 꿈꾸는 이들의 모임’ ‘비영리 단체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모임’ 등 실용적인 모임부터 골프서클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시간을 쪼개 이같은 모임에 참가하는 것은 인맥을 쌓기 위한 것. HBS뿐만 아니라 MBA과정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표다. 김씨는 “장래에 하고 싶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서 필요한 인맥을 쌓기에는 HBS만한 학교가 없다고 판단해 이 학교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졸업할 즈음에는 평생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는 것.

●막강한 동문 네트워크

이들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는 강력한 동문 네트워크. 이씨는 “1학년을 마치고 인턴으로 일할 회사를 찾을 때부터 동문의 힘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기업 대표로 있는 동문들이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새까만 후배들의 연락에도 일일이 답변을 해주고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봐 준다는 것.

한국 동문회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류씨는 “연관이 있는 일을 하는 동문들끼리 함께 사업을 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내 80여명의 동문 가운데 30%가량은 매킨지, 베인앤드컴퍼니 등의 컨설팅 회사에 몸담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급으로는 김상희 영실업 대표, 고필재 H&Q코리아 사장, 곽성신 우리기술투자 사장, 김병주 칼라일아시아 회장, 이재현 옥션 대표, 이정환 론스타 대표, 최재원 SKT부사장 등을 들 수 있다. 조동성 서울대교수는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는 박사 과정을 마쳤다.

●‘된장 코리안’의 비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 화려함의 이면에서 남들보다 몇 곱절 더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영어실력이 워낙 처지기 때문이다.

‘된장 코리안’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류씨가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그는 “한마디로 ‘지옥’ 같은 생활이었다”고 말했다. 100페이지가 넘는 영어 원서를 읽어내기 위해 고등학교 3학년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 것. 류씨는 또 “수업 시간에 하고 싶은 얘기를 적절한 단어를 구사하며 할 수 없었던 것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대개 결혼해서 가족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들이 겪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영어에 익숙지 못한 류씨의 아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년만 살고는 귀국해 버렸다.

●어떤 지원자를 뽑나

이씨는 HBS에 입학하기 전 미국에서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모건스탠리에 근무했다. 김씨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재미교포로 UC버클리대를 나와 컨설팅회사에 다녔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류씨는 모니터컴퍼니에 근무했다.

라만씨는 “전직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보다는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따진다”고 설명했다. 판단의 기준은 지원자들이 써내는 에세이와 추천장.

김씨는 “리더십을 부각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썼다”면서 “다양한 과거의 경험이 오늘의 나를 어떤 쪽으로 이끌고 왔는지를 상세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직장 경력이 짧아 학창 시절의 얘기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교내 신문 편집장을 했던 경력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 류씨는 “솔직히 말해 경력과 직장에서의 성과를 조금 과장되게 써넣은 게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추천장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 가운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 뛰어나다고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택했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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