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개구쟁이 오빠야, 이젠 함께 놀자"

  • 입력 2002년 9월 24일 17시 13분


□터널 /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28쪽 8000원 논장

이 책 겉장을 보면 한 아이가 터널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다. 별로 신지 않은 듯 깨끗한 구두밑창이 보인다. 옆에 떨어뜨리고 간 책 그림에는 공주와 마녀와 요정이 있다.

겉장을 넘겨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그림 2개가 붙어 있다. 화려한 꽃무늬 벽지와 벽돌담. ‘어라, 이건 뭐지, 책을 잘못 만들었나?’. 그러나, 바닥에 얌전히 놓인 책 한 권을 보니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비로소 어느 마을에 사는 오빠와 여동생이 소개된다. 화려한 꽃무늬 벽지 앞에 서 있는 여동생과 붉은 벽돌담 앞에 서 있는 오빠. 이 둘은 같이 있기엔 너무 달라서 같은 쪽에서도 칸이 나누어 들어 있다. 복도 창턱에 걸터앉아 책을 보는 여동생이은 생전 뛰지도 않을 것 같다. 신고 있는 분홍 털신은 새것 그대로 포근포근하다. 하지만 옆 칸의 오빠는 공을 차느라 발이 보이지도 않는다. 바지 무릎도 새까맣다. 여동생은 혼자서 깊은 숲 속 오두막을 찾아가듯 책 속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고, 오빠는 공을 들고 아이들과 어울려 세상 밖으로 나간다. 여동생에게 창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지만 오빠에게 창문은 가끔 공이 빗나가면 ‘와장창’ 깨지는 골칫거리일 뿐이다.

이렇게까지 다른 둘의 화해는 어려울 것 같다. ‘둘이 같이 나가서 사이좋게 놀다 와’라는 엄마의 주문은 높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담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터널을 발견한 오빠가 ‘야! 이리 와 봐’ 할 때까지 둘은 마주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빠가 터널 속으로 사라져 돌아오지 않자 여동생은 들고 있던 책도 떨어뜨리고 오빠를 따라 간다. 그리고는….

책 마지막 부분을 보면 두 아이가 책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웃고 있다. 창을 통해서는 따뜻한 햇볕이 두 아이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다시 화려한 꽃무늬 벽지와 벽돌담이 나온다. 그런데 이번엔 앞에서처럼 부조화하지는 않다. 벽돌담 밑에 같이 놓인 책과 공 때문이다.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이제 둘은 ‘함께’ 무얼 할까?

보면 볼수록 그림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선 하나하나, 색깔 하나하나, 물건들의 자리 하나하나가 다음 이야기를 위해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그림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찾는 재미, 확실히 그림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김혜원 주부·서울 강남구 일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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