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교활(狡 猾)

  • 입력 2002년 9월 10일 17시 22분


狡 猾(교활)

狡-교활할 교 猾-교활할 활 狐-여우 호

狼-이리 랑 豊-풍성할 풍 兆-조짐 조

韓中 양국은 과거 밀접한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비슷한 점이 많지만 간혹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동물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는 狡猾한 동물의 상징으로 여우를 꼽지만 중국 사람들은 토끼를 그렇게 보며 여우에 대해서는 ‘疑心’(의심)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狡兎(교토·토끼같이 교활함)니 狐疑(호의·여우처럼 의심을 많이 품음)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狡猾이 지금은 형용사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狡나 猾은 모두 동물의 이름이다. 그것은 ‘개견’(견·犬과 같음)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 놈도 狼(낭)이나 狽(패)와 마찬가지로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동물일 뿐이다. 어찌나 사악하고 교활한지 여우를 뺨칠 정도라고 한다.

山海經(산해경)은 작자 미상으로 온갖 기이한 동식물과 귀신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여기에 보면 狡猾이라는 놈이 등장한다. 狡는 玉山에서 사는데 모양은 개 같지만 표범의 무늬를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쇠뿔을 단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게다가 울음소리는 개와 흡사한데 이놈이 나타나기만 하면 그 해에는 大豊(대풍)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狡는 吉兆의 상징이지만 워낙 ‘狡猾’하여 나타날 듯 말듯 하다가 끝내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狡의 친구에 猾이 있다. 이놈은 狡보다도 더 간악하다. 堯光山(요광산)에 살고 있는데 사람의 몸뚱이에 돼지의 털이 나 있으며 동굴 속에 살면서 겨울잠을 잔다. 울 때면 마치 도끼로 나무를 패는 듯한 소리를 내는데 이놈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천하가 온통 大亂(대란)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猾을 凶兆(흉조)의 상징으로 여겨 다들 두려워한다. 그런데 동굴 깊숙이 박혀 기나긴 겨울잠을 자므로 여간해서는 이놈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게다가 워낙 꾀가 있어 사람을 잘 속이고 둔갑에도 능해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이처럼 狡나 猾의 간악함은 실로 혀를 내두를 정도다. 혹 이놈들이 호랑이를 만나면 몸을 똘똘 뭉쳐 조그만 공처럼 변신한다. 그래서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삼키려고 하면 이번에는 제 발로 껑충 입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하여 재빨리 호랑이의 내장으로 굴러가서는 마구 파먹는다. 호랑이가 배가 아파 뒹굴 때 이놈은 오히려 호랑이의 내장을 실컷 뜯어먹는다. 나중에 호랑이가 죽으면 유유히 걸어 나와 예의 그 ‘狡猾한’ 미소를 짓는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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