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창]송영배/´나´로부터의 해방

  • 입력 2002년 6월 28일 18시 41분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들에게 매우 경이롭게 나타난 현상은 ‘붉은 악마’들이 일구어낸 높은 수준의 열광과 환희의 국민 대축제다. 독일과의 준결승전이 있던 날, 거리로 몰려나온 ‘붉은 악마’들의 물결은 700만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각각의 종교집단, 학교, 가정, 병원, 심지어 영안실 등에서도 태극전사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분투와 그들이 일구어낸 신화를 찬양하는 격랑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해외에 사는 교포들도 붉은 옷을 입고 세계의 방방곡곡에서 모두 힘차게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이런 반향은 휴전선 너머의 북한 병사들의 함성에서도, 그리고 우리와 다소간 소원했던 일본인들의 연대적인 응원 열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로 하나된 붉은악마▼

이것을 두고서, 혹자는 ‘전체주의나 파시즘’의 불길한 조짐이라고 섬뜩해하며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하고, 또한 혹자는 한국을 세계시장에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시키는 천금같은 ‘신명나는 혁명’으로 극찬하고 있다. 물론 이런 대규모 군중의 환희를 우리가 과거에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은 히틀러를 환호하는 나치 치하의 독일국민에서거나, 아니면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며 열광하는 북한 주민들에서였다. 그래서 기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미의 맥락은 같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에 무지와 욕심의 물결이 거세게 불어와서, 탐욕의 번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처절하게 헐뜯고, 그래서 서로 살고 죽이고 하는 것이 중생들의 삶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본래 고요하고 청정한 물결과 같은 ‘청정심’에 욕심과 집착의 바람이 몰아닥치면 번뇌와 고통의 파도에 떠밀리면서, 자기의 진정성과 평화를 찾지 못하고, 아귀다툼을 하다가 결국 허무하게 죽어가는 삶의 비극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 익은 보리밭 위로 부는 바람을 ‘보리물결(맥랑·麥浪)’이라고 부른다. 이런 맥랑은 굽이진 아름다움을 연출할 뿐, 남을 파괴하고 압도하는 가공할 파괴력은 없다. 외부로부터 영향은 받지만, 그것과 조화할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외풍에 언제나 흔들리는 그저 힘없는 조그만 물과 같은 것일까, 아니면 바람의 파고를 아름답게 이겨낼 수 있는 성숙한 보리와 같은 것일까.

자본주의의 생산과정은, 마르크스의 말대로, 자본가들의 끊임없는 이윤확대의 추구 때문에, 사회생산력을 무한히 늘려나간다. 그래서 사회적 부는 엄청나게 증식되어 가지만, 그에 따른 빈부의 차이는 그만큼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을 점점 더 생산의 현장에서부터 생산재의 소비자로 전락시킬 공산이 크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현란한 광고를 통해, 각종의 소비의욕을 돋우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만든 ‘상품’에 인간의 혼이 빠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자기가 타고난 본성과 취미에 맞는 자기완성의 계발에 있음에도, 자기 밖의 ‘상품’의 ‘맹목적인 소비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더 이상 ‘소유(Haben)’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Sein)’의 회복이 현대 인간들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말했다.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상이한 이해와 갈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패거리를 지어서 아귀다툼을 하며,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처절한 혼전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 이런 이지러진 모습이 전형적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정치에 등을 돌리고 무관심을 보인다.

▼벅찬 감동 이젠 생활속으로▼

그러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태극전사들은, 처음으로 지연 학연 등의 멍에에서 해방되어, 오로지 축구 경기에 한마음이 되어, 서로 아껴주고 함께 분투하는 경이적인 집단공조의 감동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그들은 외풍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오로지 축구공을 함께 몰고 차는 게임에 정진하면서 자신들의 ‘소유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그래서 4강의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이런 순수한 게임에 무한히 매료되었던 ‘붉은 악마’들 역시 연령, 성별, 사는 지역의 차이를 초월해 모두가 함께 공감을 나누면서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한 것이다. 이제 우리 ‘붉은 악마’들에게는 이런 ‘자기 존재’와의 진정한 해후를 맛보았던 지고한 희열의 공감을 일상생활에서도 실천해 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송영배 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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