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로, ‘또라이’ 아니면 이걸 어떻게 하겠어요.”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 등장한 1970년대 시내버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 간부들이 타고 나온 80년대 모델 벤츠450 등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희귀한 차종은 모두 백씨의 소장품들이다. 백씨가 아니었더라면 20∼30년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자동차가 등장할 수 없었던 셈. 그의 자동차가 ‘출연한’ 작품만 해도 3000편이 넘는다.
“정말 피말리는 일이에요. 관리비로 하루에만 평균 20∼30만원이 나가죠. 옛날 차들이라 조금만 소홀히 관리해도 금방 고장이 나버려요.”
택시 운수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1970년 군에서 제대한 뒤 자동차 부품회사를 차리면서 여러 희귀한 차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욕심을 내어 하나 둘 사 모은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주변에서 돈 안되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구박도 엄청 했죠. 하지만 자동차들이 단종될 때마다 저걸 지금 사두지 않으면 영원히 못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어요. 누군가는 모아놔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입니다.”
그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자동차 소품 대여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도움이 된다면 훗날 교육 자료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뿐. 80년대 초반 한 방송국 PD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차량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자동차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변질될까봐서다. 며칠 후 그 PD가 다시 찾아와 “전국을 다 뒤졌지만 우리가 필요한 차량이 없다”며 간곡히 부탁하는 통에 마지못해 허락한 것이 지금의 본업이 돼 버렸다. 그는 운영하던 자동차 부품업체를 90년 정리했다.
자동차 1대당 하루 대여료는 대략 10∼50만원 정도. 언뜻 많은 돈을 벌 것 같지만 차에 들이는 물질적 정신적 수고를 따지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촬영 전날 차를 밤새 손 보는 일이 다반사인데다 빌려준 차가 고장나서 돌아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옛날 차는 다루기가 매우 어려워서 서툴게 다뤘다가는 금방 고장이 나요. 대여료 받아봐야 차 고치는데 다 들어가죠.”
그나마 남는 돈은 “딱 먹고 살만큼만 남기고” 중고차 구입하는데 쓴다.
“희귀한 차가 있으면 전국에서 제게 연락이 와요. 한 우물만 30년을 팠더니 입소문이 났나봐요. 두 달 전에는 68년산 벤츠600를 구입했어요. 모 회사의 회장이 20년전 타던 차인데 그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그 앞에서 고사를 지낼만큼 의미가 깊은 차였대요.”
후세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지만 그는 “아쉽게도 딸만 넷”이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럼 이 많은 차들은 그가 더 이상 사업을 운영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자동차 박물관을 만들려고 4년전 쯤 경기도 양수리에 2500평쯤 땅을 사두었어요. 현재 150여대가 그 곳에 주차돼 있죠. 그래도 세계에서 인정하는 자동차 생산국인데 자동차 박물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부의 도움이 있다면 좋겠지만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추진할 계획입니다.”
김수경 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