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장신정신 獨步(8)]자동차 수집광 백중길씨

  • 입력 2002년 5월 1일 18시 27분


30년간 옛날 자동차를 수집해온 백중길씨.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희귀한 차는 대부분 백씨의 소장품.
30년간 옛날 자동차를 수집해온 백중길씨.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희귀한 차는 대부분 백씨의 소장품.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축사를 낀 농가들이 즐비한 이 지역에 낯선 이웃 한 사람이 있다. 30년째 옛날 차를 수집하는 금호상사 백중길 사장(59·사진). 축사를 개조한 이곳 차고에 그가 보유한 250대 중 100여대의 차가 보관돼 있다.

“막말로, ‘또라이’ 아니면 이걸 어떻게 하겠어요.”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 등장한 1970년대 시내버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 간부들이 타고 나온 80년대 모델 벤츠450 등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희귀한 차종은 모두 백씨의 소장품들이다. 백씨가 아니었더라면 20∼30년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자동차가 등장할 수 없었던 셈. 그의 자동차가 ‘출연한’ 작품만 해도 3000편이 넘는다.

“정말 피말리는 일이에요. 관리비로 하루에만 평균 20∼30만원이 나가죠. 옛날 차들이라 조금만 소홀히 관리해도 금방 고장이 나버려요.”

택시 운수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1970년 군에서 제대한 뒤 자동차 부품회사를 차리면서 여러 희귀한 차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욕심을 내어 하나 둘 사 모은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주변에서 돈 안되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구박도 엄청 했죠. 하지만 자동차들이 단종될 때마다 저걸 지금 사두지 않으면 영원히 못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어요. 누군가는 모아놔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입니다.”

그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자동차 소품 대여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도움이 된다면 훗날 교육 자료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뿐. 80년대 초반 한 방송국 PD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차량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자동차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변질될까봐서다. 며칠 후 그 PD가 다시 찾아와 “전국을 다 뒤졌지만 우리가 필요한 차량이 없다”며 간곡히 부탁하는 통에 마지못해 허락한 것이 지금의 본업이 돼 버렸다. 그는 운영하던 자동차 부품업체를 90년 정리했다.

자동차 1대당 하루 대여료는 대략 10∼50만원 정도. 언뜻 많은 돈을 벌 것 같지만 차에 들이는 물질적 정신적 수고를 따지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촬영 전날 차를 밤새 손 보는 일이 다반사인데다 빌려준 차가 고장나서 돌아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옛날 차는 다루기가 매우 어려워서 서툴게 다뤘다가는 금방 고장이 나요. 대여료 받아봐야 차 고치는데 다 들어가죠.”

그나마 남는 돈은 “딱 먹고 살만큼만 남기고” 중고차 구입하는데 쓴다.

“희귀한 차가 있으면 전국에서 제게 연락이 와요. 한 우물만 30년을 팠더니 입소문이 났나봐요. 두 달 전에는 68년산 벤츠600를 구입했어요. 모 회사의 회장이 20년전 타던 차인데 그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그 앞에서 고사를 지낼만큼 의미가 깊은 차였대요.”

후세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지만 그는 “아쉽게도 딸만 넷”이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럼 이 많은 차들은 그가 더 이상 사업을 운영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자동차 박물관을 만들려고 4년전 쯤 경기도 양수리에 2500평쯤 땅을 사두었어요. 현재 150여대가 그 곳에 주차돼 있죠. 그래도 세계에서 인정하는 자동차 생산국인데 자동차 박물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부의 도움이 있다면 좋겠지만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추진할 계획입니다.”

김수경 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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