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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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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마이너스…기록 과장도▼
여론의 국면 전환 시점을 맞아, 뭐 하나 되는 것 없는 한국사회에서 그래도 한국영화 잘 나가는 맛에 살던 한국인들의 대중정서가 안쓰러워 차마 제기할 수 없었던 영화 붐의 허와 실에 대해 논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선 한국영화 붐은 최근의 ‘새로운 소재-거대 제작비-새로운 기술’로 대표되는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90년대 초반 기획자의 시대를 연 ‘결혼이야기’에서 점화돼 한석규를 최고의 한국영화 배우로 승격시킨 ‘닥터 봉’이 개봉된 1995년에 뜨겁게 약진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닥터 봉’은 코믹 멜로드라마라는 대중적인 장르와 그저 좀 알려진 TV 탤런트가 출연하는 영화도 기획력과 연출력만 받쳐주면 한국의 관객은 기꺼이 입장료와 여가시간을 투자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가까스로 수습하고 ‘조국의 미래는 지식 정보산업에 달렸다. 그리고 이 신산업의 핵심은 영상 소프트웨어다’라는 구호와 함께 코미디언 심형래씨를 ‘신지식인 1호’로 지정하며 애드벌룬을 띄울 때 이미 충무로에는 ‘제작자보다 투자가가 더 많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경기가 과열되고 있었다.
영상산업 같은 대중오락산업은 속성상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먹고 사는 법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불타는 용광로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적극적인 영상산업 진흥책을 실시한다며 1500억원의 국고를 쏟아 부은 것이다.
현재의 한국영화 붐이 중장기적으로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90년대 초반 이후 영화인들의 노력에 의해 자생적으로 건실하게 발전하던 한국영화계에 단기적인 거품현상을 조장하는 결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필자는 또한 현재의 한국영화 붐이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영화는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계속 원금까지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박영화 ‘친구’의 기록을 제외하면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산업의 수익률은 -29.3%다. 즉 대박영화 한편을 빼면 한국영화는 100만원을 투자해 평균 29만3000원의 손해를 봤다는 계산이다. ‘친구’를 포함시켜도 현단계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은 질적인 성장이 아니라 양적인 거품일 가능성이 높다.
즉 한국영화산업은 1995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년 동안 평균 순제작비는 9억원에서 24억원으로, 마케팅비는 1억원에서 9억1000만원으로, 그리고 이들을 합친 총제작비는 10억원에서 33억1000만원으로 엄청나게 늘어났다. 역시 돈을 쏟아 붓자 한국영화 관객은 95년 1200만명에서 2000년 2000만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대단한 매출액 증가로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투자액의 증가에 비하면 절반의 성과에 불과한 것이다.
필자는 최근의 영화흥행 기록이 상당 부분 과장 집계됐거나 극장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의 개관에 따른 단기적 효과이며 그것은 다른 문화의 희생, 즉 연극 객석을 텅텅 비게 하고 출판산업을 붕괴시키며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할리우드 눌렀다' 착각말라▼
중장기적으로 본다면 한국영화가 지금보다 시장을 더 확대하고 한국문화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영화인들과 여론은 ‘중요한 것은 땀흘려 일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일하는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 시대의 교훈을 잊고 있다.
또한 보통 한국인들은 ‘만들어진’ 한국 대박영화를 보도록 내몰리면서도 조국이 할리우드를 이기고 있다는 환상과 착각으로 경제 난국을 살아가는 기이한 만용을 키우고 있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믿는 필자는 이 점이 두렵다.
강한섭(서울예술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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