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자의 비참한 말로]히로뽕에 쩔어 50대가 80대처럼

  • 입력 2001년 7월 12일 18시 33분


서울지검 마약부 수사관들은 6일 서울 근교의 10여평짜리 아파트를 수색하면서 영화 ‘친구’의 한 장면 속에 들어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집안 곳곳에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고 냉장고 안은 곰팡이투성이였다. 방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옷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집주인은 58세의 마약중독자 Y씨. 이 비좁고 더러운 전셋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벌벌 떨고 있던 그의 엉덩이는 온통 바늘자국으로 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엉덩이에 제때 주사바늘을 꽂지 못하면 금단현상에 전신을 떨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영화 ‘친구’의 주인공처럼 마약중독자의 비참한 말로를 실감할 수 있게 했다. Y씨의 마약 전과는 이번을 제외하고도 6차례. 이날도 Y씨는 히로뽕을 사러 부산에 갈 예정이었다. 집에서는 히로뽕 분말 0.5g과 일회용 주사기 21개가 발견됐다.

그는 히로뽕 투약에 고혈압과 당뇨까지 겹쳐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셌다. 50대 후반이지만 70∼80대로 보였다고 검찰 수사관은 전했다.

‘친구’의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Y씨에게도 ‘화려한 과거’가 있었다. 그는 70년대 초반 서울 O호텔 영업부장을 했고 76년부터 2년간 D호텔에 주류를 납품하는 W상사를 운영했다. 70년대 말에는 서울 남산의 유명했던 T호텔 나이트클럽 사장도 지냈다. 당시 그의 주머니에는 돈이 넘쳐흘렀고 정관계 재계 인사들과 ‘형님’ ‘동생’ 하면서 ‘거물’이 됐다. 경남 남해의 조그만 섬에서 맨주먹으로 상경해 밑바닥부터 출발한 그는 ‘인생의 정상’에 섰다는 자부심도 가졌다.

그러나 ‘정상’은 화려한 만큼 유혹도 많았다. 마약의 유혹은 그중 가장 강했다. 마침내 그 유혹에 굴복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80년 마약투약 혐의로 처음 검거된 이후 그는 3, 4년에 한번씩 교도소를 오갔고 그러는 사이 재산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가족과 친구들도 하나둘 등을 돌렸다.

“친지들이 멀어지는 게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끊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죠. 하지만 2, 3년 잘 참다가도 주사기나 약이 눈에 보이면 몸이 발작을 했어요. 처음 마약이 몸에 들어왔을 때의 그 쾌감을 잊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Y씨는 검찰에 잡히기 전 이혼한 부인과 집 나간 아들에게서 용돈을 받아 근근이 생활해왔다. 그러나 이처럼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그 돈을 아껴 히로뽕을 사야 했다. 밥은 굶어도 마약은 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Y씨의 집에서는 히로뽕 0.5g을 희석한 증류수 3.3㏄도 발견됐다. 외출시 닥쳐올지 모를 금단현상에 대비해 주사기에 넣고 다니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것.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정선태·鄭善太 부장검사)는 12일 Y씨에 대해 치료감호를 위한 감정유치(의사의 감정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법원에 청구했다. 당초 Y씨를 기소해 정식재판을 받게 하려 했으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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