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설가 강석경 에세이집 '능으로 가는 길' 펴내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9시 30분


소설가 강석경씨가 신라 왕들의 탄생 설화와 일대기를 테마로 한 에세이집 ‘능으로 가는 길’(창작과 비평사)을 펴냈다.

5년전부터 경주로 내려가 살고 있는 강씨는 곳곳에 위치한 왕릉에서 신라인과 현대인을 연결하는 성찰의 고리를 발견했다. 이같은 사색의 결과를 문명, 집착, 꿈 등 11개 테마로 묶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건축물이나 사찰 등 유형의 문명을 되살렸다면 이 책은 1500년 전 신라인의 정신이라는 무형의 문명을 복원하고 있다.

그는 신라 석씨 왕의 시조인 석탈해 왕의 능을 거닐면서 문명에 대해 사색한다. 철기문명을 이 땅에 전파한 석탈해 왕의 설화를 인용하면서 인류를 문명사회로 견인한 철기가 공동체 문명을 파괴하는 시발점을 제공했음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능 주변을 산보하듯 고전과 시와 영화를 섭렵하고 있는 점이다. 헌강왕릉과 삼릉을 돌아보면서 처용의 현대판 모습을 영화 ‘우나기’와 ‘제너럴’에서 발견하고, 노동동 고분군에서는 진정한 여성성의 가치를 논하면서 최근 O양과 B양 비디오 사건으로 드러난 성 문제를 파헤친다.

강씨는 1990년 ‘인도기행’ 이후 10년만에 이 산문집을 펴냈다. ‘숲속의 방’(1986) 이후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 ‘내 안의 깊은 계단’까지 시종일관 ‘구원’이라는 소재에 매달려온 그가 40대의 마지막 해를 경주 고분에 바친 이유는 무엇일까?

강씨는 “거대한 알 같은 고분이 널려있는 자연의 품이 지친 여행자에게 휴식을 주었다”면서 “현실을 사랑한 적이 없으니 능 사이를 다니며 고대인들과 대화하고 환상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을 다룬 3장 ‘유목민의 꿈에 대하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학계의 분분한 학설 중에서 고대 신라인이 북방민족의 후예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작가의 상상력은 그가 갈망하는 전생(前生)의 꿈을 더듬어 대륙의 초원을 넘나들고 있다. 스스로 정신적 유목민임을 자임한 그가 구원을 향한 문학적 여정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미문(美文)에 사진작가 강운구의 사진이 곁들여져 은은한 향기를 더한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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