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불안의시대, 두 거장 삶에서 길을 찾는다

  • 입력 2000년 12월 8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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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오스트리아·1856∼1939)와 자크 라캉(프랑스·1901∼1981). 프로이트에서 시작한 20세기 정신분석학은 20세기 후반 라캉에 이르러 활짝 꽃이 피었다.

인간 무의식에 대한 이들의 탐구는 20세기 지성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은 일대 혁명이었다. 최근 프로이트와 라캉의 삶과 사상을 담아낸 평전이 거의 동시에 출간됐다. 그들의 뜨거운 학문적 열정과 지적 편력을 소개한다.

<편집자>

◇ 정신분석 혁명 / 마르트 로베르 지음 이재형 옮김 / 543쪽 2만원 문예출판사

“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자기가 아마 어릴 때 그랬던 모양이지.”

정신분석학의 시조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 그러나 비록 ‘일부의 진실’이라 할지라도 이 말 속에 진실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흑백 초상화 속에 나타난, 약간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노인. 평생 타인을 상대로 성(性)을 비롯한 은밀한 사생활을 물으며 거기에서 정신병적 징후의 원인들을 찾아냈던 분석가. 이 책은 프로이트 바로 그 자신을 진찰실 의자에 앉혀놓는다. 유년기에서 시작되는 전기적(傳記的) 요소들을 꼬치꼬치 물으며 그의 삶과 경험, 이론이 어떻게 밀착되었는지를 탐색한다.

프로이트도 이런 작업에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자신도 자기의 이론이 어떤 경험에서 착안한 것인지 추적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

예를 들면, ‘리어왕’을 연구한 ‘세 상자의 주제’라는 글에서 그는 세 가지의 여성상을 제시하며 리어왕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실제 그는 세 딸 중 막내인 안나에게 자신의 이론과 영광을 상속해주었다.

1920년 발간된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그는 리비도(성욕)탐구에만 집중됐던 자신의 기존이론을 뒤엎고 ‘죽음의 본능’개념을 도입한다. 이런 방향전환에는 1차대전이라는 전인류적 참상과 함께 같은해 딸 중 하나가 죽었던 개인사적 이유도 관련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프로이트 자신의 추측이다.

그는 한편 훗날 아내가 된 연인에게 매일 빨간장미 한 송이를 선물하는 자상한 남자이기도 했다. 책은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그의 면모들도 풍성히 소개해 인간적 매력을 지닌 프로이트 상을 우리 앞에 내민다. 그러나 그가 마냥 친근해질 수 있는 벗은 아니다. 명사가 되어 능력을 증명하고픈 욕망에 내내 시달렸고, 그 이면에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들은 꾸중이 붙박이처럼 작용했다는 분석도 곁들여진다. 저자는 심리학자가 아닌 프랑스의 독문학자. 프랑스 국영 라디오의 프로이트 특집시리즈를 위해 씌어진 대본을 각색 번역했다. 그런 만큼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 자크 라캉1,2 /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지음/ 양녕자 옮김 / 425쪽 내외 / 1만7000원 새물결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욕망하지 않는 삶은 곧 죽음이다.”

정신분석학과 언어학 사회문화학을 기반으로, 인간 욕망의 실체를 파헤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상가인 자크 라캉. 프로이트 이래 가장 독창적인 정신분석학자로, 20세기 후반 지적 패러다임의 혁명을 가져온 인물이다.

이 책은 그의 전기다. 포도주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시절 초현실주의와 스피노자 철학에 심취했고 정신과의사를 거쳐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위대한 철학자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이 당대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함께 흥미롭게 펼쳐진다.

인간의 욕망을 탐색한 인물답게 그의 삶 역시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지독한 지적 호기심과 왕성한 탐구욕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시도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그의 욕망은 가히 광적이었다. 나이 일흔이 넘어서도 정신분석을 수학화하기 위해 젊은 수학자로부터 위상학을 배웠고, 노자와 공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중국어를 열심히 배웠을 정도였다.

여성에 대한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1930년대 조르주 바타이유의 아내와의 만남. 그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들었고 결국 첫번째 부인과 결별하고 재혼을 했다. 1956년, ‘렉스프레스’ 잡지 여기자와의 만남도 재미있는 대목. 그 여기자의 고급 취향에 매료된 라캉은 점점 그녀에 몰입해갔다. 그러나 거기엔 여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했던 라캉의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그건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로맨티시즘 댄디즘 딜레탕티즘에 심취했던 라캉의 이같은 뒷얘기들이 읽는 이를 흥미롭게 한다.

라캉의 교유관계도 매력적이다. 제임스 조이스, 앙드레 부르통, 로만 야콥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메를로 퐁티, 마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루이 알튀세,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을 모두 망라한다. 라캉과 이들의 교유는 다름아닌 20세기 유럽의 지적 예술적 풍경이다. 그 풍경 속으로 라캉의 내밀하고도 신비로운 사유의 세계가 하나둘 스쳐 지나감을 느낄 수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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