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독서]침팬지 연구 40여년 구달女史의 메시지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9시 03분


■ 희망의 이유 / 제인 구달 지음 / 박순영 옮김 / 350쪽 1만원 궁리

제인 구달은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이자 침팬지 연구의 권위자.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동물책을 읽으며 밀림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57년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 여행 경비를 마련해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유명한 고생물학자 리처드 리키 박사를 만나면서 동물 연구에 빠져들었다.

1960년 26세의 구달은 드디어 탄자니아 곰베의 밀림으로 들어가 혼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침팬지 습성에 대한 이같은 연구는 영장류 동물학 연구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이후 그는 동물행동학 연구 분야의 스타로 떠올랐다.

구달은 1965년 영국으로 돌아가 케임브리지대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다시 곰베로 돌아가 침팬지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줄곧 침팬지 연구에 매달렸으며 최근엔 침팬지 보존과 침팬지 서식 밀림 보존운동,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대중 강연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1995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작위를 받았고 뛰어난 연구 탐험자에게 수여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허바드상도 수상했다. 저서는 ‘인간의 그늘 밑에서’ ‘곰베의 침팬지들’ ‘제인 구달―침팬지와 함께 한 나의 인생’ 등.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가족과 함께 바닷가재 전문 음식점에 간 적이 있었다. 입구 가까이 있는 물탱크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놈을 고르면 즉석에서 삶아주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어느 놈을 먹을까 고르고 있는데 아까부터 물탱크 곁을 떠나지 못하던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아이 둘이 눈에 박혔다. 그 아이들은 물탱크 속에 있는 바닷가재들 모두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있었다. 식사시간 내내 아무개와 아무개를 먹고 있다는 께름직함에 영 밥맛이 나질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아프리카 오지에서 최초로 침팬지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한 제인 구달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해야 할 과학자가 연구대상 동물들과 감정의 끈을 맺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학을 하기 위해 침팬지를 연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나는 그가 객관성이라는 ‘구더기’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침팬지와 하나가 되는 그 나름의 과학 덕분에 우리는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 이보다 더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생각하는 뇌 즉 대뇌에서 언어를 만드는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줄 안다. 제인 구달은 이렇게 고도로 발달된 지성을 가지게 된 인간의 특권에는 우리의 생각 없는 행동에 의해 존속의 위협을 받고 있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고 설명한다.

침팬지와 인간의 삶 모두에서 제인 구달은 악마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이타적인 천사의 모습도 함께 보았다. 특히 인간이야말로 이른바 ‘악마적 유전인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그 어느 동물보다도 풍성하게 지녔다고 그는 굳게 믿는다. 우리는 종종 정말 잔인하고 악해질 수 있지만 또한 가장 고결하고 관대하며 영웅적일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희망의 이유’는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 했던 구달이 자신의 삶을 직접 써내려 간 자전적인 글이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침팬지 연구에 빠져들게 된 과정, 침팬지와 함께 했던 40여년 동안의 고난과 희열, 그리고 침팬지를 통해 터득한 자연과 생명의 진리 등 등을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4년 전 그가 처음으로 우리 나라를 찾았을 때의 감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줄 안다. 나는 특별히 세 번씩이나 그를 따로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학문적으로는 감히 그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나였지만 이념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알면 사랑한다”는 내 소박한 평소 이념이 “침팬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가졌던 경외심도 함께 깊어졌다”는 그의 영혼과도 같은 메시지와 하나가 되는 감동을 느꼈다. 우리의 후손들이 침팬지의 아이들과 진정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세계를 기대해 본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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