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기자의 밀레니엄담론]'안티'는 다음세대 위한 복음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8시 50분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문서 반환을 위한 정부의 협상이 사실상 ‘반환’이 아닌 ‘교환’의 방향으로 흘러가자 몇 년 전 프랑스와 미국으로부터 한국 초기기독교 관련 문서들을 원본 또는 마이크로필름으로 돌려 받았던 국내 기독교 단체들의 노력이 새삼 돋보인다.

최근 서울에서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가 열릴 때 서울로 몰려든 전 세계 NGO들은 정치지도자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사회 이면의 문제를 일깨워 줬다. 의약분쟁으로 의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정부가 속수무책일 때도 시민단체들은 적극적 ‘행동’에 나서서 양측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이제 중요한 사회적 사건 주변에는 언제나 NGO(비정부기구)가 있다.

◇NGO가 권력 감시 역할◇

물론 NGO가 일부의 사적 이익을 마치 공익인 듯 위장하는 일도 있고, 민주적 선출 절차도 거치지 않은 단체나 그 대표가 공익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권력을 휘두른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또한 시민사회 내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적 현실을 호도하는 프티부르주아적 조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NGO운동의 적극적 지지자인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NGO운동을 “우리 시대 변혁을 위한 가장 용감한 십자군”이라고 찬양한다. 시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주류의 권력을 경계하며 시민의 의견을 직접 행동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NGO는 사회복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시민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하는 부문에서 문제점을 파헤쳐 널리 알리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한다. 미국 하버드대 시드니 버바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미국인의 약 80%가 하나 이상의 비영리부문 단체에 가입했고 그 가입자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비영리부문의 시민운동은 사회 구성의 다양화, 국가 권력 집중의 약화, 정보통신의 발달 등으로 계속 활성화되며 이미 국가권력과 공존한다. 이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시장의 정글화 추세 속에서 천민자본주의로의 전락을 방지하며 ‘승자’와 ‘패자’ 이전에 ‘인간’을 볼 줄 아는 성숙한 참여민주주의를 추구한다.

NGO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더 밑바닥에서 유형 무형의 권력에 도전하며 세상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가는 ‘안티’운동이 있다. 안티HOT 안티핑클 안티삼성 안티카니발 안티두루넷 안티교육 안티코리아…. 떠오르는 명사 앞에 안티(anti)를 붙여 그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소외된 단어다.

19세기 이래의 반(反)제국주의 반봉건 반독재 투쟁이 권위주의적이고 비장하기까지 했다면, 분산된 권력을 상대로 하는 요즘의 안티 운동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민주적이다. 싸움은 한편으로 상대를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안티는 사회 각 부문의 권력을 공격함으로써 빠른 시간 내에 반사적 권력을 획득할 수 있지만, 자신이 그 권력을 즐기기 시작하는 순간 자신에 대한 또 다른 안티를 낳게 된다. 안티는 ‘이상’을 추구하며 순수하게 살기 위한 끊임없는 ‘허물벗기’이기 때문이다.

◇비주류의 다양성이 생명력◇

주류 권력은 당대의 부귀영화를 약속하지만 비주류를 자처하는 ‘안티’는 언제나 다음 시대를 위한 복음을 전한다. 이 복음은 인간의 이상을 담고 약자를 위로한다. 비주류의 다양성은 주류 비주류를 넘어 그 집단이 다가올 변화에 대처 할 ‘대안의 보고’다. 비주류의 다양성을 통한 자기 단련은 그 집단에 생명력을 제공한다.

올 가을 유난히 자신이 침체됐다고 느낀다면 자신에 대한 안티 사이트를 만들 때가 됐다는 신호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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