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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0월 18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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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결혼한 뒤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얻어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유학비용을 전액 지원받기로 했다. 창업을 하느라 모아둔 돈이 전혀 없기 때문. 유학을 갈 때까지 한 달에 100여만원씩 드는 생활비도 부모와 처가 양쪽에서 번갈아 받기로 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아요. 제 주위에서 다들 그렇게 하는데요 뭐. 부모님이 여유가 있는 데다 제가 잘 되면 나중에 얼마든지 갚을 수 있는 거잖아요.”
박씨는 “우리 또래 친구들 중 상당수가 요즘 직장을 포기하고 부모의 도움을 받는다”고 전했다.
박씨처럼 결혼을 하면서 독립했다가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부메랑 현상’이 늘고 있다. 부메랑 현상은 80년대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취업을 했다가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다시 부모의 보호 아래로 돌아오던 경향을 일컫는 사회학 용어.
90년대 이후 대학을 다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 우리나라 ‘X세대’들이 최근 “컴백 홈!”을 외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벤처기업을 창업하거나 취업을 했다가 최근 경기침체로 버티기 어려워지자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 준비를 명목으로 부모 품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특히 남의 간섭을 싫어하고 개성이 강한 X세대의 특성 때문에 엄격한 규율이 강조되는 직장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기업 간부를 지낸 최모씨(58·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2년전 결혼한 아들이 최근 집으로 들어와 ‘얹혀 살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생활비와 대학원 진학 비용을 대주기로 했다.
하지만 최씨는 “우리는 저 나이 때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며 살았다. 남들은 자립할 나이인데 아직 저러고 있으니 솔직히 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취업이나 결혼을 하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의 모습과 크게 다른 것. 부모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도전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젊은 층이 너무 부모에게만 의존하려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난해 인터넷 보안전문업체인 ‘마크애니’를 세운 최종욱 사장(51)은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아온 탓인지 요즘 젊은 층은 상대적으로 자립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며 “언제까지나 부모에게만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스스로 어려운 일을 헤치며 살아가는 방법을 빨리 깨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