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터넷 좋은 책읽기 모임 "문학주부들 다 모여라"

  • 입력 2000년 7월 25일 18시 43분


“성, 공항까지 나오시느라 힘드셨죠.”

“동상은 좋겠어. 휴가 여행 한번 멀리 가네.”

24일 오후 김포국제공항 커피숍. 캐나다로 가족 휴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상경한 시솝 이금희씨(38·대구 달성군 농공읍)가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번개모임’을 갖기 위해 모임의 맏형인 박영숙씨(43·서울 영등포구 대림동)등 ‘좋은 책 읽기 모임’회원들이 모였다.

10대, 20대 N세대의 전유물로 알려진 ‘번개모임’이 30∼40대 주부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현장. 인터넷 채팅방에서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의 호칭으로 사용되는 ‘성’‘엉아’‘동상’같은 말이 자연스레 오간다.

◆20~40대 140여명 가입◆

‘좋은 책 읽기 모임’은 주부 인터넷 사이트 ‘주부닷컴’(www.zubu.com)의 100여개 동호회 가운데 하나. 5월초 문을 열어 두 달만에 회원 140명이 넘었다. 채팅을 즐기던 몇몇 주부들 가운데 한 명이 “모인 김에 책을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제안을 하면서 모임의 방향이 결정됐다.

시솝인 이씨는 올해초 인터넷을 시작한 주부. 5월말 이 동호회에 가입한 뒤 하루 2∼3시간씩 채팅에 매달리다 후배들의 ‘옹립’으로 시솝이 됐다. “요즘은 채팅 시간을 내기 위해 집안일 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어요.”

회원 가운데 한 명이 단편소설이나 수필을 ‘릴레이’형식으로 타이핑해서 올리는 게 이 모임 특징이다. “너무 어렵고 긴 글은 집안일이 많은 주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거든요.” 지난주 동호회에 단편 추리소설 ‘미인도’를 타이핑해 올린 주부 이현주씨(27·대전 서구 도마동)의 설명.

채팅은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 놓고 여유가 생기는 오전 10시∼낮 12시와 하루 일과를 마친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이뤄진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PC나 인터넷은 아직도 초보이거나 초보 딱지를 갓 뗀 수준.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로 절반 정도는 수도권에, 나머지는 전국 각지에 살고 있다. 이달 1일에는 서울 충무로의 한 음식점에서 전국에서 모인 회원 10여명이 최초의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했다.

◆시-수필 쓰고 새책도 소개◆

책을 읽기 위해 모였지만 주부들 각자의 ‘끼’는 끊임없이 영역을 넓힌다. 전남 순천에 사는 정은숙씨(27)는 이 모임에서 ‘책방 DJ’로 불린다. 아침마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음악파일을 게시판에 올리기 때문.

인터넷 책방이나 신문에서 찾아낸 신간 소개 정보 등을 꼼꼼히 타이핑해서 올리거나 시나 수필에 생활의 경험과 느낌을 담아 올리는 주부도 있다.

무엇이 주부들을 이렇듯 인터넷 동호회로 끌어들이는 걸까. 경기 일산신도시에 사는 김기향씨(37)는 이렇게 설명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은 느낌"◆

“이웃집 사람이나 친지들과는 일상생활에 대해서만 얘기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뭔가 다른 게 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우리가 잃어 버렸던 ‘그 무엇’을 찾는 느낌 말이죠.”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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