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칼럼]정과리/'카뮈:부조리와 반항의 정신'

  • 입력 2000년 6월 23일 19시 08분


▼카뮈:부조리와 반항의 정신 / 올리비에 토드 지음▼

20세기 중반기를 풍미한 프랑스의 지식인들 중에 카뮈만큼 한국 독자의 사랑을 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청소년을 위한 작가였고, 보브와르는 여성들의 작가였다. 말로는 명성보다 훨씬 적게 읽혔다. 사르트르는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나 그 영향은 지식 사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카뮈만이 유일하게 계층과 직업과 성별이 편중되지 않은 애독자를 가진 작가이다.

왜 그러할까? 태양의 눈부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이방인)의 돌출 행동 때문에? 아니면 역병이 만연한 도시에서 순교자적 열정으로 사람들을 구한 의사 류(페스트)의 도덕적 위엄 때문에? 아닌 듯하다. 인간 존재의 근거없음, 소위 부조리의 철학자는 카뮈말고도 많았다. 그 삶의 부조리를 반항으로서 뚫고 나가려 한 행동인으로 우리는 류보다 ‘인간 조건’(앙드레 말로)의 첸을 더 강렬히 떠올릴 수 있다.

카뮈를 카뮈답게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그가 유정(有情)한 작가였다는 점에 있을 지도 모른다. 그가 태어난 고장에 대한 사려 깊은 사랑, 그와 연대했거나 싸운 사람들에 대해 그가 보인 신중한 경의들 그리고 나치의 협력자들마저도 구명하려 한 그의 관용의 정신, 이런 것들은 카뮈를 합리주의로 무장한 서양의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다정하고 의리 있는 이웃 아저씨로 느끼게 한다. 그런 인상이 그저 한국 독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다정다감한 정직성’에 반했었다. 사르트르가 지식인들의 샘나는 스승이라면 카뮈는 문학과 삶을 사랑하는 만인의 친구였던 것이다.

‘카뮈:부조리와 반항의 정신’은 이 유정한 작가의 한 평생을 꼼꼼이 복각해놓은 책이자, 동시에 카뮈의 다정다감한 면모를 선명히 부각시키는 책이다. 저자는 두 가지 방법론을 끌어오는데, 하나는 환경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영향의 복합성이다. 환경이란 카뮈가 알제리의 가난한 프랑스인이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는 알제리인들과 달랐지만 동시에 권력을 쥐고 있는 프랑스인들과도 달랐다. 그는 피식민자와 식민자 모두에게 애정과 갈등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의 씨앗이 된다.

영향의 복합성이란 그가 타인들로부터 부단히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을 자신과의 내적 대화로 바꿀 수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바깥의 영향을 내면의 대화로 바꿈으로써,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생의 철학으로 수렴시킬 수 있었다. 그 생의 철학은 엄격한 윤리 규범이 아니라, 풍속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태어나 풍속을 건강하게 이끌고 가는 모랄에 대한 추구를 가리킨다.

‘순수하고 엄격하고 심지어는 관능적이기까지 한 그의 고집스런 휴머니즘’은, 그러니까, 카뮈가 세운 철학이라기보다 차라리 일상인들이 카뮈라는 인물로서 세운 철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카뮈를 사랑하는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식 옮김. 전2권 총 1344쪽 각 21000, 26000원. 책세상 펴냄.

정과리 (문학평론가·충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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