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고구려 문화유산 寶庫

  • 입력 2000년 6월 14일 19시 33분


▼정상회담 계기로 살펴본 유적들▼

서기 427년부터 668년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은 고구려 문화유산의 보고다.

평양을 대표하는 고구려 문화재는 북한의 국보유적 1호인 평양성. 평양 중구역과 모란봉구역에 걸쳐 있는 평양성은 6세기 중엽에 완성된 고구려시대의 마지막 수도성이다.

고구려의 최후를 지켜본 의미심장한 문화유산으로 총길이 23㎞에 내성(內城) 중성(中城) 외성(外城) 북성(北城)으로 이뤄져 있다. 평양성은 대동문 보통문 을밀대 부벽루 연광정 등 평양의 대표적 문화유산이 집결해있는 곳이기도 하다.

1997년 이전까지는 대동문이 국보 1호로 알려졌으나 당시 본보가 입수한 사진 자료에 의해 국보 1호가 평양성으로 바뀐 사실이 확인됐다.

3∼5세기 고구려의 수도성이었던 대성산성(평양 대성구역 대성동) 역시 북한의 국보 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동문(북한 국보 4호·평양 중구역 대동문동)과 보통문(북한 국보 3호·평양 중구역 보통문동)도 평양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지금의 건물은 모두 조선시대에 고쳐 지은 것이지만 원래 고구려 평양성의 동문과 서문이었다. 서울의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과 마찬가지로 평양을 상징한다.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무덤인 동명왕릉(평양 역포구역 재령산). 원래 중국 지안(集安)에 있던 것을 5세기 초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함께 옮겨온 것이라고 북한 고고학계는 설명하고 있다.

동명왕릉 입구엔 5세기 고구려 사찰 정릉사(평양 역포구역 무진리)가 있다. 절터만 남아있었으나 1974년 발굴을 통해 실체가 확인됐고 97년경 복원됐다. 이곳에 팔각7층석탑도 복원됐으나 국내 전문가들은 팔각탑은 고구려 양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4세기말 고구려 사찰인 중흥사의 당간지주(幢竿支柱·평양 모란봉구역 인흥동)는 흔치 않은 고구려 석조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당간지주는 절의 위치를 알리기 위한 막대기나 철기둥(당간)을 받쳐주는 석조물.

누각도 빼놓을 수 없다. 평양에서 가장 아름답고 전망이 좋은 누정은 을밀대(북한 국보 19호·평양 중구역 금수산). 6세기 중엽 평양성을 지을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원래는 평양성 내성의 군사 지휘소였다. 평양8경으로 불릴 만큼 경치도 좋지만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11m 높이의 둥근 축대가 위용을 자랑한다. 건물은 18세기에 다시 지었지만 축대는 고구려시대 것 그대로다.

대동강 풍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연광정(북한 국보 16호·평양 중구역 대동문동)도 17세기에 다시 고쳤지만 원래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쪽 지휘소였다. 칠성문(북한 국보 16호·평양 중구역 경산동), 현무문(평양 중구역 금수산)도 6세기 평양성의 성문으로 세웠다 이후에 고친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고분은 북한 남포시와 중국 지린(吉林)에 집중되어 있지만 평양지역의 고분벽화도 중요하다.

평양엔 진파리 고분, 장산동 고분, 계동 고분, 마산동 고분, 고산동 고분, 안학동 고분, 호남리 사신총 등 20여기의 벽화고분이 산재해 있다. 이중 대표적인 고분벽화는 역포구역 무진리(옛이름 진파리)에 위치한 5세기말∼6세기 초의 고구려 진파리 1, 4호분의 벽화. 사신도와 연꽃 등을 주로 그린 진파리 고분벽화는 전체적으로 생동감이 넘쳐흘러 고구려인의 기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 그러나 훼손이 심각한 상태다.

대성산성의 남쪽 기슭엔 5, 6세기 고구려 왕궁인 안학궁이 있었지만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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