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정인교수 르네상스 시리즈 완결편 '말뚝'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03분


▼'말뚝' 서정인 지음▼

15세기 피렌체. 흙속에 잠자던 고전문화가 화려하게 다시 꽃을 피웠던, 르네상스 운동의 본거지였던 곳.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주교로부터 사형 언도를 받는다. 성직자들과 부자들에게 거짓과 허영과 향락을 그만두라고 설파한 댓가였다. 교회는 ‘교황성하의 명령을 어긴 것은 이단’이라며 그의 생명줄을 틀어쥔다.

당대의 최고 예술가이자 존경받는 지식인인 화가 보티첼리. 사보나롤라의 처형에 반대하는 ‘통곡파’ 몇몇과 의기투합, 주교를 살해한다는 계획을 세우는데….

작가 서정인 (전북대 영문과 교수)의 신작 중편 ‘말뚝’ 도입부분이다.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사팔뜨기’ ‘용병대장’등 작가가 모색해온 ‘르네상스 탐문 시리즈’의 완결편.

80년대 말 ‘달궁’시리즈에서 선보인 토속성과 진한 전라도 사투리는 ‘마그누스 압 인테그로 사이클로룸 나스키투르 오르도, 시대들의 위대한 질서가 새로이 탄생하다’와 같은 라틴어 문장의 특이한 울림으로 대치된다. 그러나 대화가 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대신 현실을 탐색하는 수많은 시선을 떠올리고, 성긴 총체적 상(像)을 띄워낸다는 점 만은 ‘달궁’시리즈와 변함이 없다.

주인공들의 행동은 때로 이해할 수 없고 모순되기에 이를 데 없다. 대의의 대변자요 피끓는 열정의 소유자처럼 보였던 젊은이들은 특별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데도 ‘거사’를 맥없이 포기한다. 사보나롤라의 처형날, 아무렇지도 않게 달걀을 까먹으며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주인공들은 어쩌면 현세에서 더 긴 호흡의 삶을 모색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먼저 가졌던 분노 자체가 진지함을 상실해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작가는 정답 없이 ‘열린 텍스트’로 작품을 펼쳐놓을 뿐이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는 문예부흥으로 성가가 높지만 그것은 시대의 좋은 면일 뿐이다. 사제는 신의 권위의 지상대리인이 되어 부와 향락을 속인들과 다퉜다. 부패한 시대와 맞서 싸우다 화형을 당한 한 수사의 모습을 이 중편이 그의 시대 속에서 보여주길 바란다.”(작가의 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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