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유미리 '남자'/몸과 섹스… 잠재된 에로스 탐미

  • 입력 2000년 5월 19일 19시 48분


‘책 아니면 아이’. 유한한 개인의 삶을 영속시키려면 둘 중 한가지는 남겨야 한다는 중세 속담이다. 재일교포이자 아쿠다가와 상 수상작가인 유미리(31)는 두 가지를 단번에 해치웠다.

1월, 아버지를 밝히지 않은 채 아들을 낳아 화제가 됐던 그. 바로 뒤이어 몸과 섹스에 대한 적나라한 생각을 소설에 담아냈다. 최근 문학사상사에서 번역 출간된 ‘남자’.

남자의 신체를 귀 손톱 엉덩이 등 18개의 장에 각각 당겨놓고, 그는 그 각각의 부분에 잠재된 에로스를 탐색한다. 작품은 두 줄기의 텍스트를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외견상 자전적 에세이처럼 보이는 본래의 텍스트가 있고, 작가가 써내려가는 허구의 ‘포르노 소설’이 있다.

두 텍스트를 나란히 늘어놓으면서 작가는 소설 ‘타일’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했던, “성(性)이야 말로 상상력 그 자체이며 상상력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라는 명제를 증명해보인다.

이빨….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내. 웃는 새하얀 이빨이 천진난만해 보였던. 그러나 일요일에는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그. 어느날 여자는 일요일에 충동적으로 남자의 옷가지를 산뒤, 창고에 던져버리고 오열한다. 추억의 끝에 여자는 글을 쓴다. 혀끝으로 느끼는 상대방 이빨의 감촉.

수염…. 칫솔과 면도칼 외에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면도에 집중할 때면 무엇엔가 도취된 듯 보였던 그. 그의 수염의 감촉도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여자는 글쓰기를 계속한다. ‘아파요. 가서 면도하고 와요. 남자가 얼굴을 떼자, 뽀얀 유방이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엉덩이, 입술, 유두…. 때로 위악적(僞惡的)이며 자학적이기도 한 자기방임의 포즈. 작가는 말미에서 포르노 소설 쓰기를 중단하고 만다. “모든 환상이 사라진 다음에 남자의 육체만이 남고, 그 육체에 대한 정욕이 새로운 환상을 불러일으키는데 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나는 쓸 수 없을 것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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