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항쟁 보도통제 실상]신문기사 절반이 '가위질'

  • 입력 2000년 5월 10일 18시 46분


“18일 오전 1시반경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 학생회관 3층 옥상에서 농학과 2년 이세종군(20)이 13m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군은 이날 0시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 발표된 직후 계엄군이 학교에 진입, 학생회관쪽으로 몰려들자 3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몸을 피해 옥상 밑에 부착된 철제 외등걸이를 붙잡고 매달렸다가 밑으로 떨어져 숨졌다는 것….”(동아일보 80년 5월19일자)

“21일 밤 10시 현재 광주시내 적십자 병원에 안치중인 총상 입은 시체 17구를 포함, 전남대 조선대 기독병원 등 4개 병원에 안치중인 총상 시체가 59구인 것으로 본보 취재진에 의해 확인됐다. 현재 각 병원에는 총상을 입은 부상자로 초만원을 이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태이며 적십자 소속 앰뷸런스가 ‘피가 모자란다. 동포애를 발휘해 헌혈해 달라’고 호소하며….”(동아일보 80년 5월22일자)

80년 5월 ‘광주사태’의 급박한 상황을 타전한 기사들. 그러나 이 기사들은 계엄당국의 보도검열에 걸려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당시 광주와 관련한 모든 언론보도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것은 전두환 보안사사령관의 서명이 담긴 ‘5·17 계엄확대조치 및 포고령 제10호에 의한 보도통제지침’ 때문. 그 뒤 20년. 신군부의 손에 ‘삭제’돼 역사 속에 묻혔던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기사들이 한 교수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됐다.

순천향대 이민규(李珉奎·40·신문방송학과)교수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언론보도 분석-검열 삭제된 기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베일에 가려졌던 신군부의 언론검열 실상을 분석 공개했다. 이교수는 논문을 통해 당시 계엄당국의 검열로 ‘잘려나가’ 발표되지 못한 각종 기사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통계적 방법과 각종 문헌연구를 통해 신군부 검열정책의 ‘실체’를 밝혔다.

특히 이교수는 연구과정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는 5·17포고령 직후 계엄군의 교내 진입을 피해 달아나다 추락사한 전북대생이었으며 △이 기간 중 국제통화기금(IMF) 협의단이 방한해 정부관계자들과 경제정책에 관해 협의했다는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광주사태 발발 다음날인 5월19일부터 6월1일까지 2주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검열 삭제된 모든 기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대상은 동아 조선 경향 등 7개 신문사를 비롯해 합동 동양통신(현 연합통신으로 통폐합) 동아방송(DBS) 한국방송공사(KBS) 문화방송(MBC) 등 5개 방송국 등 모두 14개 언론매체.

이번 연구 결과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해사건으로 계엄이 선포된 79년 10월27일부터 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24일까지 신군부가 검열한 기사는 총 27만70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전면삭제 1만1033건(4%)과 부분삭제 1만6023건(5.8%)을 포함해 총 2만7058건의 일부 또는 전체가 ‘사장’됐다. 하루 평균 620건의 기사가 ‘가위질’ 당한 셈. 매체별 검열 대비 삭제건수는 총 2만7058건중 신문이 1만1485건(43%)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방송(26%), 통신(25%) 순이어서 신문매체에 대한 계엄당국의 탄압이 극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검열탄압’은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중 극에 달했다. 2주간 하루평균 829건, 총 1만1616건의 기사가 ‘검열도마’에 올라 1739건의 기사가 삭제됐는데 이 중 신문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898건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이 기간의 검열삭제건수는 3개월의 계엄기간 중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신문기사 삭제 비율도 전체 평균치(42%)를 훨씬 웃돌아 신군부가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가리기 위해’ 이 기간 중 언론을 집중적으로 탄압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12일 순천향대에서 열리는 한국언론학회 2000년 봄철 정기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당시 언론이 신군부의 ‘협박’에 굴복해 광주를 외면했다는 세간의 비난과 달리 탄압에 맞서 실상을 알리기 위해 몸부림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또 “당시 대학생으로서 친구들로부터 전해들은 광주의 실상에 울분을 토했던 경험과 시대에 대한 ‘채무감’ 때문에 이 논문을 준비하게 됐다”며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어두운 현대사의 그늘에 가려졌던 언론탄압의 실상이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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