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부르주아 유토피아'/도시-교외 구분 없어져

  • 입력 2000년 5월 5일 20시 03분


▼'부르주아 유토피아' 로버트 피시만 지음/한울 펴냄▼

푸른 잔디와 울창한 나무 사이로 깨끗하고 안락한 집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늘어서 있는 전원도시, 최첨단 통신망이 갖춰진 그곳에서 노동과 삶이 어우러지는 그 날. 그 날은 오는가?

미국 뉴저지주립 럿거스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의 대답은 “예스”다.

그가 “부르주아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이 교외지역은 18세기 전반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부르주아의 기념물”이다.그는 ‘교외의 사회사’란 부제의 이 책(원제목 Bourgeois Utopias)에서 18세기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근대산업사회의 산물인 교외의 역사를 살펴보며 앞날을 전망한다.

전근대적 도시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활동의 중심부와 가까운 곳에 거주하며 생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실제로 당시에 ‘교외’라는 단어는 대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지역의 슬럼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런던은 세계의 모든 도시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건축이 가장 잘 돼 있고 가장 붐비며, 친절하고 부유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랑할 만하다.”

부유한 이들에게 1720년대 런던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18세기 중엽까지 ‘주거’와 ‘작업장’은 실질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지배층의 입장에서 보면 과밀함은 곧 생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효율성을 극대화한 이 밀집도시에 산다는 것은 사실상 자신과 가족들이 가장 혼잡한 지역에서 생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스트랜드 가(당시 런던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는 중앙에 3∼4인치 깊이의 더러운 웅덩이가 언제나 냄새를 풀풀 풍겼다. 웅덩이의 물은 지나가는 행인, 창문을 올리지 않은 마차, 길가에 있는 집에 더덕더덕 칠해졌다.”

변화는 18세기 중엽 런던의 상인 엘리트가 ‘도시의 편리함’과 ‘시골의 건강함’을 동시에 향유하기 위해 가정과 점포의 겸용으로 사용하던 도심의 주택에서 주변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나타났다. 전형적인 중산층의 창조물인 교외지역은 주택건축의 역사에서 주거지와 도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고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영국의 런던과 맨체스터, 미국의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의 교외지역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탈중심화(Decentralization)의 기술들, 즉 자동차 전기 전화 등이 발달하면서 사회의 도시 기능들을 중심부에 묶어뒀던 유대는 점점 느슨해졌다. 가장 중요한 도시 기관들은 외곽으로 분산되고 교외는 주거지일 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존재하는 ‘외부도시’의 일부가 돼 갔다.

“과거에 주변부 공동체들은 공업과 대규모 상업을 배제했지만, 오늘날의 교외는 20세기 후반 경제에서 가장 급속히 성장하는 활동들의 심장부가 됐다. 도시와 시골 사이의 특권적 지대라는 교외의 기본 개념은 첨단연구센터가 농지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중심부의 폐쇄된 공장부지에서 풀이 자라는 탈도시적 시대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새로운 주변도시와 전통적인 교외 침상공동체를 구별하기 위해, ‘테크노버브(Technoburb)’라는 신조어를 사용한다.

고속도로와 진보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주변도시는 도시 집중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도시적 다양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테크노버브의 출현과 더불어 교외지역의 역사는 끝난다”는 것이다. 270쪽 1만4000원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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