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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21일 20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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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행위가, 뒤따르는 발전이란 관점에 비춰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우리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결국은 우리 자신도 사회적 발전의 종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역사가 가운데 가장 널리 인용되는 학자로 꼽히는 에드워드 팔머 톰슨(Edward Palmer Thompson·1924∼1993)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은 1963년 출간 직후부터 숱한 찬사와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이 책은 이번에 한글로 번역되면서 또 한번의 화제를 낳았다. 번역기간 10년. 서울대 서양사학과의 나종일 명예교수를 비롯해 한정숙 노서경, 숭실대 김인중, 부산대 유재건, 서강대 김경옥교수 등 서양사학자들이 모여 꼼꼼한 번역으로 비영어권 최초로 이 책의 번역본을 냈다.
18세에 영국공산당에 가입했다가 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 후 탈퇴해 스탈린주의와 결별한 후 좌파운동과 반핵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톰슨은 1780년대부터 1832년까지 영국에서 노동계급이 어떻게 형성돼 역사에 등장하게 됐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계급을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그 형성과정을 경제적 관계, 정치·문화적 전통, 삶의 경험, 투쟁, 의식 등 다수 대중의 주체적 측면과 연결시켜 파악하는 그의 시각은 이에 대한 찬반과 관계없이 오늘날 역사인식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양말제조공, 시대에 뒤떨어진 직조공, 유토피아적 장인 등을 후손들의 지나친 멸시에서 구해내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새로운 공업화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은 퇴영적 관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업혁명기 사람들의 실패한 주의 주장들 가운데 몇가지에서는 우리가 아직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악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