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마르셀 뒤샹의 '샘'/세상에서 가장 비싼 변기

  • 입력 2000년 1월 16일 20시 26분


미술계의 ‘교란자’로 불리는 프랑스 출신 작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의 화장실변기 작품이 최근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76만달러에 팔렸다. 이는 뒤샹의 작품 경매가 중 최고가이다. 뒤샹은 1917년 시중에서 구입한 화장실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달고 ‘R.Mutt(얼간이)’라는 사인을 한 뒤 한 전시회에 출품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뒤샹은 화장실변기에 사인 하나만을 표기해 작품으로 둔갑시켰다.

그러나 뒤샹의 이러한 시도는 예술작품이 항상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기성제품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예술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일상용품과 예술품사이의 경계를 허물려했던 이 일은 미술사에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뒤샹은 화장실변기도 작품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기존 예술계의 권위를 비웃고 신랄한 풍자를 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화장실변기가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주변의 모든 물건이나 행위가 관점과 예술적 의미 부여에 따라 얼마든지 예술작품이나 예술행위로 여겨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번 소더비경매에서 팔린 작품은 1964년 뒤샹이 1917년 출품한 것과 똑같이 사인한 8개의 ‘에디션(Edition)’ 중의 하나. ‘에디션’은 조각작품이나 판화작품처럼 똑같은 작품을 여러개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일정한 숫자로 작품의 수를 제한해서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같은 작품을 무한정 많이 만들어내면 희소성이 떨어지므로 작가가 스스로 숫자를 제한한 것.

미국 미술전문잡지 ‘아트 뉴스’에 따르면 뒤샹의 ‘샘’을 소장하지 못한 미국의 주요 미술관과 미술계인사들이 이번 경매에서 팔린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1백만달러의 ‘급전’ 을 구하지 못해 구매를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유럽의 수집가가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샹 작품의 이전 최고 경매가는 99년의 60만7500달러로 ‘모나리자’그림 위에 콧 수염을 붙여놓은 작품이었다. 이번 경매가는 그 때보다 1백만달러 이상 폭등한 것이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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