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

  • 입력 1999년 7월 2일 19시 22분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H M 옌첸스베르거 지음 변상출 옮김 실천문학사 398쪽 9000원▼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1930년대 스페인 내전에서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하며 파시즘과 맞서 싸우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숨진 신화적인 혁명가. 그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다. 부당한 자본과 정치권력의 억압에 처절하게 대항하면서 현실을 변혁시켜 나가려 한 노동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자료로 생생하게 구성해놨다.

두루티는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 레옹에서 출생해 철도선로 노동자로 일하면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다. 무정부주의자들로구성된노동자국민연합(CNT)에 가입, 적극적인 노조활동을 펴다가 1917년 총파업 사태 이후 해고돼 도망다니던 중 파리로 망명한다. 이 곳에서 조직활동을 배운 그는 완전한 직업혁명가로 변신해 스페인으로 돌아가 파업현장에 선동가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론적 선동가로만 머물지 않고 실천적 행동가로 더 많이 활동한다. 그래서 여러 번 체포돼 수감생활을 했고 세 번이나 사형언도를 받기도 했다.

이런 체험 속에서 그는 스페인의 1936년 혁명에서 중요한 혁명투사가 된다. 바르셀로나가 ‘파리 코뮌’처럼 완전히 노동자의 수중에 들어온 후에도 그는 한 지역의 노동자 해방에 만족하지 않고 마드리드를 스페인 파시즘 대부 프랑코의 군대에 내주지 않기 위해 원정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이 전투에서 죽음을 맞는다.

만일 스페인 혁명이 성공했다면 그는 민족의 영웅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실패로 그는 불온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현재 그의 무덤은 바르셀로나 교외 한 공장의 그늘진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다. 석공은 비석에 그의 이름을 조각해 넣지 못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사람이 작은 칼로 서투르게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젊음을 바친 두루티’라는 글귀를 새긴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이념으로 결합된 두루티와 그의 부인인 프랑스 여인 에밀리엔 모린과의 사랑이야기, 혁명이 좌절돼 망명지에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혁명동지들의 튼튼한 연대감 등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콜라주’라는 독특한 구성형식을 갖추고 있다. 저자는 신문기사 팜플렛 여행일기 연설문 목격자인터뷰 등을 하나의 구조로 짜맞춰 나가면서 전체적으로 통일된 줄거리를 엮어 내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목소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저자는 당시 스페인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덟 편의 해설을 싣고 있을 뿐이다. 이같은 형식에 익숙지 않은 국내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산만해보일 수도 있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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