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산책]야단법석(野檀法席)

  • 입력 1999년 5월 28일 11시 12분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순수 우리말 같아 보이지만 실은 漢字語(한자어)이거나 따져보면 한자말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다. 어떤 것들은 본래의 뜻이 변질되어 턱없이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

아주 시끄럽고 떠들썩하다는 뜻인 ‘야단법석’은 한자로 野壇法席이다. 원래의 뜻은 佛敎(불교)용어로 들판에 베푼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라면 엄숙해야 마땅했고 처음에는 그렇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부처님의 설법이 이어지면서 점점 많은 聽衆(청중)이 들판에 모여들어 시끄럽고 떠들썩한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야단법석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고 서로 다투기도 하는 시끄러운 판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건달’은 乾達. 아무 가진 것도 없으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난봉을 부리거나 허풍을 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도 불교용어 乾達婆(건달바)에서 유래했다. 건달바는 須彌山(수미산)남쪽의 金剛窟(금강굴)에 살면서 술과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고 香(향)만 먹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음악담당 神(신)이다. 그래서 건달바는 인도에서 음악 혹은 예능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한동안 그런 뜻의 말로 행세했다. 그러나 藝人(예인)을 천시했던 이 땅에서는 견뎌내지 못하고 건달바는 건달이 되었고 그 뜻도 오늘날 두루 쓰이는 뜻으로 변질되었다.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을 비유하는 ‘벽창호’는 碧昌牛(벽창우)에서 비롯되었다. 벽창우는 평안북도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에서 나는 크고 억센 소를 가리켰다. 그런 소를 닮은 사람을 벽창우라 불렀는데 어느새 벽창호로 바뀌었다.

키가 크고 흉악한 사람을 가리키는 ‘범강장달’은 范彊張達. 張飛(장비)를 죽인 범강과 장달이 키가 크고 흉포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등신’은 等神. 쇠 나무 흙 따위로 사람을 닮게 만든 神像(신상)이란 말이다. 당초에는 全知全能(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를 뜻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정반대로 쓰이고 있다.

김담구(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