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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월 2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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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다듬어 드리지요.
그는 섬세한 가위질로 조심스럽게 귀 밑을 다듬어 나갔다. 나는 그저 미안해서 의자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머리를 숙이고 나직하게 물었다.
내일이죠?
그런 모양이오.
그가 다시 말없이 가위질을 했다. 나는 면도를 하느라고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천정을 향하여 누워 있었는데 위에서 물기가 똑똑 떨어졌다. 눈을 떴다. 그가 면도를 멈추고 돌아서서 눈가를 훔치고 있었으니 아마도 내 얼굴에 눈물을 떨군 모양이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의 작업이 계속 되기를 기다렸다. 그가 잠시 후에 면도를 다시 시작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향내나는 스킨을 턱과 뺨에 듬뿍 발라 문지르고 사회에서처럼 마른 수건으로 목과 귓가를 부드럽게 닦아 주고나서 그는 말했다.
다 됐습니다.
고맙소.
하면서 일어나려고 했더니 그는 나의 어깨를 지긋히 누르며 아까처럼 속삭임으로 말했다.
오 선생님, 제가 잠깐 기도를 하면 안될까요?
나는 잠깐 어리둥절 했다. 기불천 교인도 아니고 기도를 해본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불천 교인이란 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신도들이 재소자의 교화를 돕기 위해서 먹을 것들을 싸들고 종교 집회를 하러 오는데 그때마다 종교와 종파를 바꾸어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놀리는 우스개 말이었다. 나는 그 잠깐 동안에 우리의 저 긴 긴 고독을 생각했다. 그는 내 기억을 통하여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그의 기도를 오래 떠올릴테니까.
그렇게 해주겠소?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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