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일대기 「산은 산 물은 물」 출간

  • 입력 1998년 10월 28일 19시 12분


‘여기 길이 있다. 아무도 그 비결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는. 그러나 그 길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길 자체도 없다.’

허공중에 뜬 말. 그러나 스물여섯살의 청년 이영주는 그 말을 붙잡아 ‘문없는 문’을 열어 젖히고 ‘길 없는 길’을 걸어 끝내 자기안의 부처를 찾았다. 스스로 깨친 이인 그의 이름은 성철(性徹).

11월8일은 성철 큰스님의 열반 5주기. 때맞춰 간행된 ‘산은 산 물은 물’(민음사·전2권)은 성철 큰 스님의 생전 모습을 소설의 틀을 빌려 그려낸 작품이다.작가 정찬주씨는 ‘소설 유마경’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 등을 펴낸 불자 소설가. 그러나 ‘산은 산 물은 물’을 집필하는 동안 그는 상상력 풍부한 소설가보다는 충실한 기록자로서 성철스님이 남긴 흔적들을 끌어모아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는데 충실했다.

정검사라는 화자가 성철스님의 구도흔적을 더듬어가는 액자소설 형태를 지녔지만 성철스님의 상좌인 백련암 주지 원택스님, 속가의 딸인 불필스님, 해인사 방장 법전스님등 성철스님을 가까이서 지켜본 수십명 실존인물들의 증언이 소설의 뼈와 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은 산 물은 물’이 지니는 또하나의 가치는 작가가 해박한 불교지식을 동원해 성철스님이 남긴 한자어 법문의 의미와 맥락을 쉬운 우리말로 풀어놓은 점. 불자가 아니더라도 친절한 우리말 뜻풀이를 통해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초연히 내 홀로 걸어가노라(誰人甘死片時夢/超然獨步萬古眞·성철스님의 ‘출가시’중)’던 성철스님의 사상적 흐름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종신불퇴(終身不退)’라는 스님의 글씨 복사본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마음을 다잡으며 책을 썼다는 작가는 “모쪼록 모든 이들이 성철스님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자신속의 불성(佛性)을 만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