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인간 「T타입」]긴장감 즐기며 자기식 대로 산다

  • 입력 1998년 10월 18일 19시 03분


‘제발 좀!’ 95년 대학 졸업 후 방송국 PD시험에 1등으로 합격한 황모씨(29·여·경기 고양시 일산구). 3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모 은행에 다시 최고성적으로 입사하더니 1년도 못돼 사표를 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나 뜬금없이 “시집 가겠다”며 공부에도 시들.

별명이 ‘보헤미안’인 박모씨(31·서울 은평구 증산동). 95년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이 일이 아닌가벼’라며 사표를 던지고 여행사로 옮겼다. 해외여행이 적성에 맞나 싶더니 불쑥 사표를 내고는 백수로 지내며 사업구상 중.

최근 묵직하게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만 찾아나서는 인간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클린턴 미국대통령도 안정된 현실을 못 견뎌하며 일련의 스캔들에서 드러나듯 끊임없이 스릴과 모험을 찾아나서는 ‘T타입’ 인간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

▼ T&t ▼

미국 템플대 프랭크 팔리박사(심리학)의 ‘T타입 이론’에 따르면 스릴을 즐기는 정도에 따라 성격은 ‘T타입’과 ‘t타입’으로 나뉜다. T는 스릴(thrill)의 약자. T타입은 정력적이고 모험심이 강하다. 실패확률이 높은 일도 과감히 밀어붙이며 바쁜 삶을 원한다. 조직생활을 싫어하고 독립심이 강하며 독단적이다. 바람기가 많고 ‘첫경험’도 남들보다 이르다. 실험정신이 강해 섹스에서도 다양한 체위를 시도한다. t타입은 T타입의 상대 개념. 체제순응적이며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

▼ 좋은 T, 나쁜 T ▼

T타입이 되는 원인에 대해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 암벽등반 등 스릴 넘치는 일을 할 때 T타입은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분비돼 쾌감을 느낀다는 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정도. 분명한 것은 T타입은 자칫 자신이나 가족, 사회에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덕성여대 심리학과 김미리혜교수. “범죄자의 상당수가 스릴을 ‘부적절하게’ 해소한 T타입이다.” 그러나 적절한 창구를 통해 욕구를 해소하는 T타입은 ‘선구자’나 ‘아이디어맨’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하기도. 아인시타인 처칠 피카소가 이같은 T타입으로 분류.

▼ t속의 T ▼

T타입을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따라 사회도 T타입과 t타입으로 나뉜다. 보수적 집단주의 가치관이 강한 단일민족국가인 우리나라는 전형적 t타입 국가이며 t타입 인간이 많은 사회. 김교수는 “개인의 운신폭이 좁은 우리사회에서 T타입은 수많은 ‘해서는 안 될 일’에 얽매여 스릴욕구를 풀 여지가 적다”고 설명. 김교수는 그러나 황씨와 박씨처럼 방황하는 T타입이나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는 T타입도 어떤 ‘채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클린턴이 될 수도, 피카소나 아인시타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 “기분이 안 좋을 때 술을 마실 것이냐 운동을 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