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경쟁 덜하게 「IMF베이비」 낳자』

  • 입력 1998년 8월 24일 19시 22분


▼ IMF시대의 역발상

“여보, 지금 우리 둘째 아이 가지면 어떨까?” 증권회사에 다니는 남편(34)이 갑작스레 꺼낸 말에 뾰루퉁해진 아내 김희영씨(29).

아내〓첫 애를 낳은지 일년도 안됐어. 서두를 필요없쟎아.

남편〓어차피 맞벌이 계속 할 건데 혼자 자라면 외로울거야. 동생을 만들어줘야지.

아내〓지금 시대에 어떻게 둘이나 키워? 남들은 하나도 안 낳고 IMF시대가 끝나기만 기다리는데….

며칠 뒤 저녁식사 시간.

남편〓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조금 어려워도 지금 아일 갖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세대엔 경쟁자가 많아 대학 들어가고 취직하는 게 힘들었쟎아. 하지만 남들이 애 낳지 않을 때 태어난 아이는 그만큼 유리할 거 아냐?

아내〓자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그럴싸 하네.

남편〓나중에 낳더라도 어차피 아이 키울 때 들어가는 돈은 마찬가질거야. 이들 부부는 ‘노력’ 두달만인 7월 둘째 아이를 ‘선적’했다. 남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쪽으로 몰려간다고 판단될 때 ‘역발상’으로 베팅한 것. 과연 이들은 게임에서 이길 수 있을까.

▼ 예상되는 게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박사는 “실직가정에서 경제사정 악화로 인공유산 피임 결혼연기 등을 결심한 비율이 28%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 김박사는 93년 1.75명에서 96년 1.71명으로 떨어졌던 우리나라의 출산율(3년마다 조사)이 99년에는 1.5명으로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대략적으로 출생아수가 12% 가량 감소해 그만큼 생존경쟁이 약해질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 또 경제상황이 호전되면 출산을 미루던 부부들이 일시적 출산붐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 때 태어난 아이들이 진학하게 되면 학급 당 학생수가 증가하는 등 IMF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 비해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50년대 후반에 태어난 여성세대가 베이비붐세대. 이들이 낳은 자녀는 현재 15∼18세. 이들이 약 7년 뒤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 또다른 베이비붐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IMF사태가 끝나 아이낳기 붐이 겹치면 폭발적 인구증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김씨 부부의 ‘미리 낳기 작전’은 대성공인 셈. 그러나 이런 예상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대한가족계획협회 이시백회장은 “미국에서는 불경기에 출산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나지만 우리나라는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지리라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는 여성의 결혼연령이 높아지면서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

▼ 남아있는 남아의 문제

출산율이 떨어져도 문제는 남아있다. 사내아이를 낳느냐 여자아이를 낳느냐에 따라 장차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것. 남아선호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출산율이 낮아지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 비해 더욱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성비(性比) 불균형이 심해진 것도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80년대 중반부터의 일.

따라서 IMF시대 출산율이 떨어졌을 때 태어난 남자아이는 초등학교에서 짝을 찾는데 문제가 생기고 신부감 찾는 경쟁도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3월 둘째 딸을 본 ‘딸기아빠(딸 2명)’ 이덕형씨(31·코래드 PR팀)는 “두 딸의 재롱을 보는 것 자체도 재미있지만 20여년 뒤 딸들이 지닐 경쟁력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자랑했다.

〈김홍중기자〉kima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