具常 시인, 새시집 펴내고 교통사고로 와병중

  • 입력 1998년 6월 9일 07시 11분


시인은 지금 ‘면회사절’이다.

일흔아홉 생애를 되돌아 본 시집 ‘인류의 맹점(盲點)에서’(문학사상사)를 펴냈지만 책을 받아들고 환히 웃어야 할 원로시인 구상은 병원 침대 하얀 시트에 말없이 얼굴을 묻고 있다.

5월에 입은 불의의 교통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번씩 넘나들었다. 이제 겨우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이송. 가족과 친지들은 하루하루 병세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었지만 그는 달관한 듯 평온했다. 언제든 길 떠나는 마음이 번잡하지 않도록 새 시집속에 지상에서 머문 흔적을 차곡차곡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었을까.

‘이건 참으로 내키지 않는 고백이지만/이제 나의 늙음을 내 스스로가 느낀다//…오직 자신의 70평생 삶이 내 뜻대로 되고 나의 것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만은 알아차린다.//…이제까지 끄적여 온 나의 시라는 것도/머지않아 내 인생의 회귀와 함께/저 마당에 떨어져 쌓인 낙엽처럼/쓰레기 더미에 버려질 것이다.’(‘노년’중).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아는 한 그는 글로써 자신의 권세를 추구하지 않았다.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욕망에서도 자유로웠다. 흑과 백 어느 한편을 택해 목청을 높이는 축도 아니었다.

공산독재의 억압적 체제를 비판했다가 고향땅을 등지고 삼팔선을 넘어야했지만 전쟁 와중에도 멸공(滅共)의 나팔수가 되기보다는 ‘동포를 죽이는 것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고뇌했다. 장면정권의 입각 제의도, 오랜 친구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 후 ‘한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도 거부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시해된 뒤 독재의 서슬에 짓눌려 있었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환호할 때 그는 추도시를 썼다. 후배문인들의 격한 반발에 그의 답은 조용했다.

“친구가 죽었다. 그 아픈 마음을 나는 시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고백은 어쩐 일인가.

‘…하지만 머리 또한 간사하여/여러가지 가면과 대사를 바꿔가며/그래도 시인이랍시고 행세하고/천연스레 진 선 미를 입에 담는다’(‘어떤 고백 2’중).

세상의 소음이 요란할 때면 대문을 걸어 잠그고 ‘두이노의 비가’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던 그. 그러나 한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회한에는 콧날이 찡해온다.

‘아내의 시신을 영안실에다 옮기고/나는 대합실 돗자리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며느리가 딸애랑 저희 이모랑 수근대더니 나에게 다가와/수의(壽衣)가 한벌에 50만원부터 최상품이 120만원인데/65만원짜리를 골랐으니 “아버님 의견은 어떠시냐”란다.//…―평생 옷 한벌 해줘 본 적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어/―그거 120만원짜리, 120만원짜리로 해라!//마치 역정 난 사람처럼 내뱉고는/옆으로 돌아앉아 버린다.…’(‘수의’중).아름다운 시어로 갈고 다듬기보다는 솔직한 일상어로 군더더기없는 그의 시집. 남을 탓하기 전에 제 허물을 먼저 꺼내어 보이는 노시인의 고해성사는 더불어 사는 이웃들과 언젠가 미국 동물원에서 마주친 이 섬뜩한 성찰을 나누어 갖기 위함이리라.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찔끔 놀라게 하는데…’(‘가장 사나운 짐승’중).

아직 그가 떠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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