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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5일 1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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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도 아닌 학술지가 호외를 낼 정도로 우리 지식사회의 위기는 심각하다. 나라의 경제가 파탄에 이를 때까지 지식인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지금의 위기 한복판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1998 지식인 리포트’는 이같은 물음에 답하는 한국 지식인의 뼈저린 자기 성찰이다. 성찰의 시각은 최근 우후죽순처럼 터져나오는, 그래서 때로는 천박하고 그 진의가 의심스럽기도 한 상투적 자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첫 단서는 IMF 위기를 바라보는 필진의 예리한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위기라는 말의 허구성을 이렇게 포착한다.
‘위기라는 말에서 어쩐지 매저키즘의 냄새가 난다. 모두가 쏟아내는 이 말에 무엇인가 불순한 의도가 끼여든 것 같아 찜찜하다. 위기는 다양한데 모든 위기를 경제난이라는 하나의 위기로 과장, 은폐하려는 파시스트적인 편집증이 나타난다. 거기에는 위기의 실상을 얼렁뚱땅 넘겨버리고 기득권을 이어가려는 사악한 의도가 숨어있다’.
좌담 ‘한국의 지식인, 무엇을 생각하는가’에는 이러한 자기 성찰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참석자는 자칭 타칭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김성기 현대사상 주간(사회학), 김영민 한일신학대교수(철학), 소설가 복거일 고종석씨. 이들은 지식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낱낱이 폭로한다.
김교수의 지적. “머리 속에서 체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있지만 세상을 체감하지 못하는, 관념으로 살아온 사람들. 자기 분열에 빠진 한국의 지식인.” 고씨는 이렇게 반성한다. “글로 먹고 산다는 지식인들의 글을 보면 우선 글이 아니다. 형식은 물론이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도 없는 한국의 지식인.”
그리고 학연 지연에 얽매인 교수 사회의 무사안일, 진보와 보수 또는 좌파와 우파라는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파탄에 이른 우리의 사상, 프랑스 철학을 중심으로 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무비판적인 함몰, 그로 인한 우리 학문의 식민지화 등에 대해서도 비판과 자성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이밖에 대학과 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한 ‘대학 사회의 내면풍경과 혁신을 위한 진단’,IMF시대 지식인의 사명과 학문의 방향을 모색한 ‘시대의 변화와 지식인의 성찰’ 등의 특집도 실려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