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옷가게 쿠폰,IMF시대 신종화폐 부상

  • 입력 1998년 4월 7일 20시 03분


포커에 환장한 중소기업체 대리 L씨(32·서울 노원구 중계동). 엊그젠 거래처 사람들과 서울 역삼동 패밀리레스토랑 마르쉐(02―508―0231)를 찾았다. 돈가스를 시킨 일행과 달리 달랑 커피 한잔만 한 L씨. 카운터 아가씨가 예외없이 바구니에 든 공 중에 하나를 집으란다. “짠짜라잔, 3번공! 닭다리 공짜로 먹는 쿠폰이 되겠습니다.” ‘꽝’ 한사람 빼고 생맥주 메밀 피자 과일케이크 등이 적힌 쿠폰 한장씩을 거머쥔 5명. 순간 L씨의 ‘판’본능이 발동. “몰아주기 하자!” 가위바위보 결과 쿠폰은 무더기로 운좋은 L씨에게. 다음날 공짜 쿠폰 5장에 콜라 1잔 값만 내고 ‘배가 터질뻔한’ L씨의 일성. “허, 이거 돈되네.”

쿠폰맨.

‘IMF식 신종 화폐’로 자리잡은 쿠폰. ‘손해보는 장사 없다. 뭔진 몰라도 사기다’는 무조건 의심 끝. 신장한 사회신용기반이 갑작스레 쪼들린 경제형편을 만나자 ‘알뜰 쿠폰족’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바야흐로 ‘폰생폰사(쿠폰에 살고 쿠폰에 죽다)’시대(?).

‘쿠폰, 오린 만큼 돈법니다.’

최근 동아일보에 난 광고. ㈜씨엠에스(02―508―3501)가 전국 2백60여 슈퍼마켓 또는 백화점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게재. 오려가면 세제 두부 간장 기저귀 등 품목별로 2백50원에서 1천원까지 값을 깎아주는 쿠폰이 신문에도 등장했다. 3백원짜리 신문을 흔들면 이젠 돈이 우수수수?

대기업 과장의 아내 이현주씨(33·주부·서울 구로구 개봉동). 어제는 동네 반달목욕탕(02―625―6118)에서 3천8백원에 사우나하고 2천원짜리 쿠폰 2장을 받았다. ‘단골인데 한장 인심써라’ 떼써서 모두 3장. 남편과 아이들 없는 빈집에 돌아오니 밥하기 귀찮아 점심은 중국집 짬뽕 하나, 2천원짜리 쿠폰 또 1장. 문득 찬장에 박아둔 빈 커피병 뚜껑을 열어 모아둔 쿠폰의 금액을 센다. 모두 10만5천원. 즉시 쿠폰나라(02―625―6110)에 전화. 사흘 뒤 집으로 무료 배달된 티타늄 수저 5벌을 안은 이씨.

“공짜는 황홀해.”

쿠폰걸.

‘얼마치 모으면 얼마짜리 사은품을 준다’식의 쿠폰. 성미 급한 우리 주부들로선 감질날 수밖에. 초인적 인내력을 발휘, 10만원까진 어떻게 모아도 20만원 30만원 크게는 1천만원까지 ‘쿠폰 수개년 계획’같은 걸 세워 멋진 컴포넌트 한번 공짜로 바라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너무 간단. “모을 동안 쿠폰회사 망하면 어떡하느냐?”

그러나 걱정 붙들어매도 좋다는 쿠폰나라 기호윤부장. “쿠폰은 소리소문으로 크는 산업. 후퇴는 없다. 절대 안망하겠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인수업체가 기존의 탄탄한 가맹점망을 떠나선 존재할 수 없는 법. 따라서 쿠폰사용자는 운영업체와 관계없이 지속적인 혜택을 보장받는다.”

쿠폰북.

작게는 영화티켓, 커봐야 우편엽서보다 약간 크다. 가입비와 연회비를 받고 매달 집으로 우송해주거나 패밀리레스토랑 또는 길거리에서 무료 배포. 음식점 학원 카페 놀이동산 마사지 옷가게 비디오방 병원 세탁소 등 실로 ‘방방곡곡+속속들이’지만 요약하면 △깎아주거나 △무료로 주거나 △덤으로 더주는 셋 중 하나. ‘남자친구와 함께 오는 여성, 파마하면 남자 머리커트 공짜’에서부터 ‘지갑에 넣고 다니면 자신도 모르게 절약정신이 솟아나 부자가 된다’는 ‘부적쿠폰’까지. 심지어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한 ‘사이버 쿠폰’도 다운받을 수 있는 ‘쿠폰 춘추전국’. 그러나 반드시 살펴야 할 ‘쿠폰의 그늘’.

한 예. ‘2만원’이란 가격 앞에 보란듯이 ×가 쳐져 있는 무료연극관람쿠폰. ‘공짜다’ 좋아하다 보면 한구석에 씨알만한 글씨로 적힌 ‘팜플렛 구입 별도’. 결국 팜플렛을 의무적으로 사야하는 5천원짜리 연극인 셈.

쿠폰업자들은 △유효기간 등 쿠폰내용을 꼼꼼히 읽어볼 것 △미리 전화해 의문점을 물어볼 것 △물건구입후 쿠폰을 주게 돼 있는 경우는 적극적으로 ‘달라’고 할 것 △할인혜택을 받는다고 들떠 과잉구입하지 말 것 등을 조언한다.

쿠폰클럽 김철호대표.“쿠폰은 어여쁜 여자에게 대시하는 남자의 운명과 같다.‘웬 떡?’하며 정신없이 뛰어들면 망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맘으로 냉정하게 이용하면 ‘봉잡는’ 거다.”

〈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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